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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8년]] [[오가와 성]](緒川城)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오와리 국]](尾張国) [[지타 군]](知多郡)의 호족 [[미즈노 다다마사]](水野忠政)이며 모친은 [[미카와 국]](三河国) 출신의 오토미(於富)(게요인, 華陽院)이다. 일설에는 생부는 아오야마 마사노부(青山政信)이며 미즈노 다다마사는 양부라는 설도 있다.
 
미즈노 다다마사의 미카와 영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조부인 [[마쓰다이라 기요야스]](松平清康)의 손에 평정된 뒤 승자인 마쓰다이라 기요야스는 미즈노 다다마사에게 그의 아내 오토미를토미를 요구하였고, 이에 오토미는토미는 남편과 강제로 이혼하고 딸인 오다이와도다이와도 헤어져 마쓰다이라 기요야스의 후처가 되었다. 그러나 마쓰다이라 기요야스는 [[1535년]] 25세의 나이에 가신 아베 마사토요(阿部正豊)의 손에 암살당하였다.
 
오토미의토미의 주선으로 마쓰다이라 기요야스의 아들이자 오토미의 양아들이었던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広忠)는 [[1541년]] 16세 때 오토미의 친딸인 14세의 오다이와 결혼하였다. 이 혼인에서 오다이는 아들 다케치요(竹千代, 후일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얻었다.
 
그러나 오다이의다이의 아버지 미즈노 다다마사가 사망하고, 뒤를 이은 오빠 [[미즈노 노부모토]](水野信元)가 이마가와 가문의 보호를 받고 있던 도쿠가와 가문을 배반하고 이마가와 가문의 정적인 오와리의 오다 가문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오다이의다이의 입지는 매우 어려워졌다. 이마가와 측에 충성의 표시를 할 필요가 있었던 도쿠가와 히로타다가 가신들에게 설득당하면서 오다이는 이혼당한 뒤 친정인 [[가리야 성]](刈谷城)으로 보내졌다. 당시 아들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이는 2세였다.
 
이후 [[1547년]] 노부모토의 뜻으로 [[지타 군]] 아구이의 성주인 [[히사마쓰 도시카쓰]](久松俊勝)와 재혼하였다. 히사마쓰도시카쓰 또한 재혼으로, 첫 부인 역시 미즈노 가문 출신의 여인이었으나 그녀가 사망한 뒤 미즈노와의 재 동맹을 위해 오다이를 맞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3남 3녀가 태어났다.
 
[[오케하자마 전투]](桶狭間の戦い) 이후 이마가와 가문으로부터 독립하고 오다 가문과 동맹을 맺은 이에야스는 히사마쓰와 오다이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들에게 마쓰다이라 성을 내리고 가신으로 받아들인 뒤 오다이를다이를 다시 어머니로 맞아들였다. 오다이는다이는 남편 히사마쓰가도시카쓰가 사망한 뒤 머리를 깎고 불문에 귀의하였다.
 
이후 [[160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정실인 [[고다이인 (1542년)|기타노만도코로]](北政所)와 [[교토]]를 방문, [[고요제이 천황]](後陽成天皇)을 알현한 뒤 같은 해 [[교토]]의 [[후시미 성]](伏見城)에서 사망하였다. 유골은 에도 덴쓰인에 안장되었다.
 
== 같이 보기 ==
* [[히사마쓰 씨히사마쓰씨]]
 
[[분류:1528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