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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opulation of Korea under Japanese rule-ko.svg|썸네일|오른쪽|인구 (1910-1942)]]
 
[[1905년]], [[대한제국]] [[내무부]]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인구는 5,793,976명이었다. 그러나 대한 제국의 인구 조사는 부정확했다. 농업 기술의 발달과 경작지의 증가 등에도 불구하고 숙종 43년(1717) 11월 14일 실록에 의한 전국의 호수 총계는 155만 7709호, 인구는 683만 9771명, 영조 23년(1747) 12월 28일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서울의 호수는 3만 4153호, 인구는 18만 2584명이며 8도의 호수는 172만 5538호, 인구는 734만 318명(남 353만 9107명, 여 380만 1211명) 등에 비해 적기 때문. 대한제국 내무부의 조사 자료는 사실상 망국으로 전의 부정부패 등으로 행정력이 크게 감소한 결과로 추정됨. 1905년에 체결된 제2차 한일 협약에 의해 그 이후부터 한국의 인구 조사는 일본이 실행하였다. 일본 통치가 시작된 [[1910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13,128,780명이었다. 일반적으로 이것도 상당수가 누락된 숫자로 보고 있다. 한국 사학자 중 하나인 이이화는 [[1910년]] 무렵에는 1,742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ref>1910년 ~: [[이이화]], 《한국사이야기22. 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 바람》(한길사, 2004) 24쪽.</ref> 일본 통치가 끝나기 전의 해(1944년)에는 25,120,174명이었다.(일본 내 기록) 인구증가의 이유가 1920년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 17만명이 70만명이라는 막대한 숫자로 증가한 인구를 더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평균 수명은 20 대부터 40 대까지 늘어나고 인구는 1910 년1910년 추정 1300 만, 1942 년까지 321942년까지 년간32년간 2500 만명이 되었다.
 
== 역대 통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