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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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ref>{{헌정회|379}}</ref>, [[1924년]] [[1월 6일]] ~ [[2009년]] [[8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이다.
[[전라남도|전남]] [[신안군|신안]]에서 태어났고, 제6·7·8·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 생애 초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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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납치사건 ====
{{본문|김대중 납치사건}}
이 사건은 한국 공권력의 일본국의 주권침해라는 한·일 양국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되었다. 김 서기관의 해임, 김대중의 해외 체류 중 활동면책,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의 사과 방일 등을 약속 받고 물러섰다. 그러나 미국의 조정 및 한일 간의 막후절충으로 김동운 해임, 김대중의 해외체류중 언동에 대한 면책, 김종필 국무총리의 진사방일(陳謝訪日) 등이 합의됨으로써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었다. 도쿄에서 납치된 후 동교동 자택에 귀환하면서 귀국하자마자 가택연금과 동시에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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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당한 후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되고 1979년 [[12월 8일]] 가택연금에서 해제 되었다.<ref>[http://www.theveritas.co.kr/contents/article/sub_re.html?no=4081 민주주의·평화통일에 평생 바친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베리타스 2009.08.22</ref> 그 뒤 재야인사들과 함께 신민당에 재입당하려 했으나 김영삼 총재는 입당 때 심사하겠다며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았고, 재입당을 포기한다.
김대중은 [[1979년]] [[12·12 군사 반란]] 발생 이후 [[12월 14일]] 아침에 [[강원룡]] 목사와 만났다. 강원룡은 김대중에게 당신 이번에 대통령 할 생각 절대로 하지 마라며 대통령을 김영삼에게 양보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강원룡에게 "이미 끝났다. 강 목사님이 군(軍)이란 세계를 모르고 하는 말씀인데, 군은 통수권자에게 절대 복종한다. 박정희가 (살아) 있을 때는 박정희가 통수권자니까 거기에 충성했지만 이제 박정희는 죽었다. [[장군]]들이 그 다음엔 내가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내게 충성하고 들어올 것이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ref>[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4/200403020500004_6.html 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④] 신동아 2004년 3월호</ref>
이듬해 1980년 5월 13일에 김대중은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 공산집단이 우리의 과도기를 이용하여 남한에 대해 폭력에 의한 그들의 야욕을 성취하려는 음모를 획책하려는 일이 절대 없기를 엄중 경고한다"면서 "국민과 학생, 근로자들은 질서를 지키고 사회 안정을 유지하여 북한공산집단이 오판할 계기를 주지 말하야 한다"라고 발표하였다.<ref>[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51300329201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5-13&officeId=00032&pageNo=1&printNo=10651&publishType=00020 金大中씨 會見 北傀의 過渡期 틈탄 暴力 음모 警告] 경향신문 1980.05.1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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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김대중이 전두환에게 보낸 탄원서<br>1차 편지전문<br>대통령각하<br>본인은 광주사태 배후조종혐의 및 국가보안법, 반공법, 내란예비음모, 계엄포고 위반사건 등으로 1, 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 상고중에 있습니다.<br>본인은 그간 본인의 행동으로 국내외에 물의를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국가 안보에 누를 끼친 데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국민앞에 미안하게 생각해 마지않습니다.<br>본인은 앞으로 자중자숙하면서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아니할 것이며 오직 새시대의 조국의 민주 발전과 국가 발전을 위하여 적극협력 할것을 다짐합니다.<br>본인은 본인과 특히 본인사건에 연루되어 수감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특별한 아량과 너그러운 선처가 있으시기를 바라마지않습니다.<br>1981년 1월 18일 金大中<br>김대중 옥중서신 전문<br>全斗煥 大統領 閣下<br>國事에 軫念하신 가운데 閣下의尊體 더욱 健勝하심을 仰祝하나이다.<br>閣下께서도 아시다싶이 本人은 矯導所生活이 二年半에 이르렀아온데 本來의 持病인 股關節變型症과 耳鳴등으로 苦楚를 겪고 있으며 專門醫에 依한 充分한 治療를 받고자 渴望하고 있읍니다.<br>本人은 閣下께서 出國許可만 해주신다면 美國에서 二 三年間 滯留하면서 完全한 治療를 받고자 희망하온데 許可하여 주시면 感謝千萬이겠읍니다.<br>아울러 말씀 드릴 것은 本人은 앞으로 國內外를 莫論하고 一切 政治活動을 하지 않겠으며 一方 國家의 安保와 政治의 安定을 害하는 行爲를 하지 않겠음을 約束드리면서 閣下의 善處를 仰望하옵니다.<br>1982年 12月 13日 金大中<br>(옥중서신) 편지 전문<br>전두환 대통령 각하<br>국사에 전념하신 가운데 각하의 존체 더욱 건승하심을 앙축하나이다.<br>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본인은 교도소 재소 생활이 2년반에 이르렀사온데 본래의 지병인 고관절변형, 이명 등으로 고초를 겪고 있으며 전문의에 의한 치료를 받고자 갈망하고 있습니다.<br>본인은 각하께서 출국허가만 해 주신다면 미국에서 2~3년간 체류하면서 완전한 치료를 받고자 희망 하온데 허가하여 주시면 감사천만이겠습니다.<br>아울러 말씀드릴 것은 본인은 앞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절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으며 일방 국가의 안보와 정치의 안정을 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음을 약속드리면서 각하의 선처를 앙망하옵니다.<br>1982년 12월 13일 金大中<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12300329201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1-23&officeId=00032&pageNo=1&printNo=10866&publishType=00020 김대중 탄원전문] 경향신문 1981.01.23</ref>}}
{{인용문|이후 탄원서에 관한 김대중 회고<br>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살게됐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전까지는 밖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전혀 몰라 죽는 줄로만 알았었지요.<br>남산에서 안기부의 한 담당자가 국무회의에서 감형을 의결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니 자필 탄원서를 써덜라고 하더군요.<br>자기도 나와 같은 가톨릭신자라며 절대로 언론에는 공개하지 않을테니 요식 행위로 써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탄원서라는 것을 썼는데 그들은 결국 약속을 깨고 그 내용을 공개했습니다.<br>내용 자체야 별게 아니지만 그때 그 사람이 같은 천주교 신자로서 나를 속인 행위에 대해선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10900209110001&edtNo=50&printCount=1&publishDate=1994-01-09&officeId=00020&pageNo=10&printNo=22394&publishType=00010 김대중 카드로 푼 한미회담] 동아일보 1994.01.09</ref>}}
[[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상원 의원은 71년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로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에 대해 "당신은 한국의 [[존 F. 케네디]]"라며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1980년 김대중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자 구명운동에 앞장섰고 미국 망명 생활과 귀국 때도 큰 도움을 줬다. 케네디 의원은 [[1984년]] 4월 26일 김대중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과 나는 민주와 평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지지한다"라고 썼다. 85년 2·12 총선 전에 귀국을 결심한 김대중은 1984년 6월 "84년 말까지 귀국하기로 결정했다"라는 뜻을 서신에 담아 전했다. 케네디 의원은 86년 5월 한국에서 민주화를 위한 김대중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ref>[http://news.nate.com/view/20090828n00030 에드워드 "DJ, 당신은 한국의 JFK"] 경향신문 2009.08.2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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