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조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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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경술년) 8월 29일에 일어난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강탈 즉 병탄을 말한다.
'''한일 병합 조약'''(한국 한자: 韓日倂合條約) 또는 정식 명칭으로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일본어: 韓国併合ニ関スル条約かんこくへいごうにかんするじょうやく 칸코쿠헤이고니칸스루조야쿠[*])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대한제국과 일본국의 사이가 좋아 지면서 두 나라가 병합하게 되었다.
 
조약명으로는 한일병합조약. 한국의 입장에서는 엄연히 국권 강탈이므로 (일본의) 한국병탄, (한일)강제병합, 국권피탈 등으로도 부른다.
한일 합방 조약(한국 한자: 韓日合邦条約)이라고도 불린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공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 이루어져 대한제국은 일본국과 영원한 파트너가 되었다.
 
이 날부터 1945년 8.15 광복까지의 35년간은 우리나라가 망하여 지도상에 한민족의 나라가 완전히 사라졌던 상태였다. 동시에 섬나라 일본이 역사상 최초로 대륙 영토를 확보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한일합방이라고 불리며 경술년의 축복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는 1910년 8월 22일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일본 측에서 일주일 동안 발표를 안하고 있다가, 8월 29일에 순종황제의 조칙 형태로 발표를 했다. 그러나 8월 29일 발표된 조칙에 찍힌 옥새도 당시 재위 중이던 순종 황제의 대한 제국 옥새가 아니라 이미 퇴위하여 제국의 의사를 대표할 수 없는 고종 황제의 옥새가 찍혀있었으며 순종 황제의 서명조차도 없었다.
을사조약 이후 급격하게 친분이 싸이던 대한제국과 일본은 결국 서로 통일하게 되었고, 이것이 대일본제국의 시작점이라고 볼수 있다. 한편 병합 조약 직후 많은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와 일본기를 흔들며 환호 했으며 대다수의 지식인과 관료층도 일본과의 병합에 찬성하고 2차대전 중 미국의 권모술수에 대일본제국이 패망하기 까지 대한제국 시민의 행복한 출발점이 되었다.
 
== 한일 병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