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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원 개혁 ====
한편 당시 원나라는 피지배층 한족의 반란인 [[홍건적의 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1354년]] 음력 7월부터 [[1356년]]까지 원나라의 지원 요청으로 [[최영]], [[이방실]], [[안우]], [[김용]], [[정세운 (고려)|정세운]], 유탁(柳濯) 등은 병력 2천을 이끌고 원나라에 파병되었다. 파병군은 고려종정군(高麗從征軍)이라 불렸다. 파병 후 귀국한 장군들이 원나라의 몰락을 상세히 보고하여, 공민왕의 [[공민왕의 반원개혁|반원개혁]]에 힘을 실어주었다.
 
[[1356년]](공민왕 5) 음력 4월 공민왕은 당시 [[원나라]]의 [[기황후]](奇皇后)를 중심으로 하여 권세를 부리던 [[기철]](奇轍) 등과 [[권겸]], [[노정]] 등의 부원 세력을 역모죄로 숙청하였는데, 이를 병신정변(丙申政變)이라 한다. 또한 몽골의 연호와 관제를 폐지하고 [[고려 문종|문종]] 당시의 칭제(稱制)로 환원하였으며, 원나라의 [[정동행중서성이문소]]도 폐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