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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9월 2일]], 내외 정세와 총독의 동정을 살피던 중, [[하세가와 요시미치]]의 후임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임명되어 부임한다는 것을 알고, 사이토의 내한 당일 현재의 [[서울역]]인 남대문역에서 조선 총독으로 신임된 사이토 마코토를 [[사이토 총독 저격 사건|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터졌지만 빗나갔고, 빗나간 폭탄으로 인해 수명의 구경꾼들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ref>윤치호, 윤치호 일기:1916-1943 (김상태 편 번역 | 역사비평사 | 2001) 133페이지</ref>
그는 현장에서는 몸을 피했으며 거사 뒤 현장에서 빠져나와 오태영(吳泰泳)의 소개로 장익규(張翊奎), 임승화(林昇華) 등의 집에 숨어다니다가, 도피 중 독립운동 탄압으로 유명한 [[조선총독부|총독부]] 고등계 형사인 일제의 앞잡이 [[김태석 (1882년)|김태석]](金泰錫)에게 붙잡혀 9월 17일 수감되었다. 이후 총독부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최종 판결에서 총독 암살미수혐의와 민간인 사상 혐의로 사형 구형,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향년 66세. 그는 체포되어 재판받고, 교수형 당하기까지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않고 당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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