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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한미한 집안이었으나, 아버지 적공(翟公)이 학문에 힘써 군의 문학(文學)이 되었다. 적방진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태수]]의 하급 관리가 되었는데, 다른 관원들은 그를 두고 멍청하다며 무시하였다. 그러나 여남의 채보(蔡父)는 그의 관상을 보고 [[열후]]에 봉해질 상이니 유학을 공부하라고 일렀고, 적방진은 계모와 함께 [[장안]]으로 떠났다. 계모는 신을 삼아서 학비를 마련했고, 적방진은 두각을 드러내어 의랑(議郞)에 임명되었다.
 
[[하평 (전한)|하평]] 연간에 박사가 되었고, [[승상승상사직]]사직(丞相司直)으로 승진하였다. [[전한 성제|성제]]를 따라 감천궁(甘泉宮)에 가던 도중 [[사례교위]] [[진경 (전한)|진경]]의 탄핵을 받아 거마를 빼앗겼으나, 적방진은 도리어 진경이 예전에 저지른 잘못을 들추어내어 그를 파면시켰다. 또 승상에게 무례하게 군 후임 사례교위 연훈(涓勳)도 탄핵하여 좌천시켰다. 사례교위를 잇달아 파면시킨 일로 대신들도 적방진을 두려워하였고, 승상 [[설선]]은 그를 중용하였다.
 
[[영시 (전한)|영시]] 2년([[기원전 15년]]), [[왕준 (전한)|왕준]]의 뒤를 이어 [[사공 (관직)|어사대부]]가 되었다. 취임한 지 8개월 만에 적방진은 [[경조윤]] 시절의 잘못 때문에 [[집금오]]로 좌천되었으나, 한 달 후 설선이 파면되자 신하들의 추천으로 후임 승상이 되고 고릉후(高陵侯)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