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촉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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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회제 유선'''(孝懷帝 劉禪, [[207년]] ~ [[271년]])은 [[촉한]]의 제2대 황제(재위: [[223년]] ~ [[263년]])이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 (서진)|진수]](陳壽)가 [[위 (삼국 시대)|조위]] 정통론<ref>위나라의 군주에게만 제(帝)의 표기</ref> 의 입장에서 전 황제인 선주(先主) 소열제(昭列帝) [[유비]](劉備)와 구별하여 유선을 후주(後主)라고 지칭했기에 후주로도 불린다. [[자 (이름)|자]]는 공사(公嗣).
 
[[유비]]의 적차남이자적장남이자 [[감부인]]의 소생이며, 아명은 '''아두'''(阿斗)였다. [[조운 (촉한)|조운]](趙雲)이 당양 장판파에서 구하였고 유비가 '너 때문에 용맹한 장수를 잃을 뻔하였다' 라고 한탄하며 땅바닥에 던져버렸다고 전해지는 아두가 곧 그다.
 
17세에 [[유비]]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고, [[유비]]의 탁고 유지를 받든 [[승상]] [[제갈량]](諸葛亮)에게 내정과 외정을 총괄케 하고, 신료들을 감독하게 하였다. [[제갈량]] 사후, [[장완]](蔣琬), [[비의]](費禕), [[강유]](姜維) 등에게 국정을 맡기고 정치에 관여를 거의 하지 않으며{{출처|날짜=2009-10-21}}, 말년에 권신 [[진지 (촉한)|진지]](陳祗)와 환관 [[황호]](黃皓)를 총애하였다. 재위 40년 째인 [[263년]]에 [[등애]](鄧艾)의 기습 공격으로 수도인 성도(成都)가 위태로워지자, 그해 겨울에 [[위 (삼국 시대)|위]]에 항복하였다. 이후 [[종회]](鍾會)와 [[강유]]가 촉 회복 운동, 즉 위나라에 대한 반란을 꾀하다가 토벌된 뒤, [[낙양]](洛陽)에 압송되어 안락공(安樂公)에 봉해졌다. 아명인 아두는 무능한 자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인다.{{출처|날짜=201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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