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크기가 바뀐 것이 없음, 1년 전
== 정치 ==
=== 카다피 정권 ===
리비아는 1951년, 국왕 [[이드리스 1세]]가 통치하는 [[리비아 연합 왕국]]으로 독립하였으나, 1969년 9월 [[카다피]]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 왕정을 폐지하고 [[리비아 아랍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1977년에 카다피는 국호를 [[대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인민 자마히리야국]]으로 바꾸었으며, 같은 해 3월에 인민주권확립선언(신헌법)을 채택하여 인민직접통치체제를 확립하고 전인민위원회 (내각)를 창설했다. 의회인 전인민회의는 1천 명 내외의 지방인민회의 대표들로 구성되고, 전인민회의총서기국은 혁명지휘위원회를 대신한 것으로 전인민위원회와 함께 1년에 2차례 개최되는 전인민회의에서 선출된다. 1979년에 카다피는 전인민회의 서기장직을 사임하였으나,‘9월 혁명의 지도자’라는 호칭으로 국가원수 직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2011년)는 민주화 운동이 벵가지에서 일어났다가 카다피 정권의 정부군이 벵가지에 폭격 및 공격을 감행하여 국제적 비난을 받았었다. 시민군이 생겨나 리비아 도시를 카다피 정권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시민군이 그후로부터 나토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시민군이 해방시키는 도시 수가 늘어남에 따라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수립되어서 카다피 정권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하여 트리폴리까지 공격을 하여 트리폴리를 해방시키고 녹색국기가 내려지고 리비아 왕국 국기였던것이 다시 올려졌다. 카다피 정권과 친카다피 정부군이 장악을 하고 있는 시르테, 사브하, 바니왈리드으로 축소됨에 따라 시민군과 나토(NATO : 북대서양 조약기구)군의 총공세가 이어졌다. 결국 [[2011년]] [[10월 20일]] [[카다피]]는 시르테에서 사망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시민군한테 발각되어서 총살을 당했다.), (카다피 경호원이 총으로 카다피를 사살했다.), (병원 후송 중 사망했다.) 이렇게 어떻게 죽었는지 과도정부가 지금 조사중이다. 조사 결과 시민군들에게 사살을 당한 것이 밝혀졌다.
 
== 주민 ==

편집

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