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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낮 12시 [[경성부|서울]]의 [[탑골 공원]]에서 [[기미 독립 선언서|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을 선언한 학생과 청년들은 수십만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온 거리를 휩쓸음으로써 3·1운동은 시작되었다. 한번 불붙은 만세 시위는 일제의 헌병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 퍼져나갔고, [[간도]]·[[시베리아]]·[[연해주]]·[[아메리카 대륙|미주]]지역까지 퍼져나갔다.
 
200만 명이 넘는 민중이 참여하여 약 2개월에 걸쳐 투쟁하는 동안에 232개의 부·군 가운데 229개의 부·군에서 시위와 폭동이무력항쟁이 일어났고, 1,491건의 시위를 벌였으며 160개가 넘는 일제 통치기관을 파괴했다. 그러나 4월 말에 접어들면서 일제의 집단학살·살인·방화·고문 등 무력 탄압으로 3·1운동은 차츰 사그라졌다.
 
=== 1920년대의 민족해방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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