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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본관은 [[전주 이씨]], 조선 제16대 임금 [[조선 인조|인조]]의 셋째아들인 [[인평대군]]의 10대손 이철용과이철용(李哲鎔)<ref>가계 상으로는 인평대군의 동생인 [[용성대군]]의 10대 종손(宗孫)</ref>과 청풍 김씨의 아들이다맏아들이다. 1907년 《제국신문》에 입사하고, [[대한협회]]에 가입하여 교육부 사무장을 역임하였다. 이 때부터 《제국신문》에 신소설 《고목화》, 《빈상설》 등을 연재하였고, 1908년에는 《고목화》, 《빈상설》, 《홍도화》, 《구마검》 등의 단행본이 발간되었다. 1910년 《매일신보》에 입사하여 《화세계》, 《화의 혈》, 《옥중화》 등 여러 작품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였다. 1913년 《매일신보》를 퇴사하였고, [[1927년]] [[5월 11일]] 사망하였다.
 
== 작품 활동 ==
{{위키문헌|저자:이해조}}
이해조는 신소설의 창시자로서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여러 신소설을 연재하였으며, [[쥘 베른]]의 《[[인도 왕비의 유산]](''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égum'')》을 일본어 번역을 중역하여 《[[신소설#철세계|철세계]]》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특히 《춘향전》, 《심청전》, 《별주부전》 등의 [[조선 후기의 문학#소설 문학|소설]]을 《옥중화》, 《강상련》, 《토의 간》 등의 신소설로 고쳐 썼다. 1908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제국신문》에 연재하여 1911년 단행본으로 발간된 《쌍옥적》은 한국 최초의 ‘정탐 소설’, 즉 [[추리 소설]]로 불린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월하가인》, 《탄금대》, 《봉선화》 등이 있다.
 
== 주석 ==
<references/>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