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데 아우스트리아 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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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lonso Sánchez Coello 005.jpg|thumb|돈 카를로스]]
'''돈 카를로스의펭인판'''(Don'''사'''on C Carlosarlos de Austria, [[1545년]] [[7월 8일]] ~ [[1568년]] [[7월 24일]])는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공|왕태자]]로 [[펠리페 2세]]와 [[포르투갈의 마리아 마누엘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23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죽었다.
 
== 생애 ==
카를로스의 어머니 마리아 마누엘라는 그가 태어난지 나흘만에 죽었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 없이 자랐다. 카를로스는 말을 배우는 것이 늦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말을 더듬었다. 그의 아버지 펠리페 2세는 평생 네 번이나 결혼을 했는데 18세 연하였던 세 번째 부인인 프랑스 공주 [[이사벨 데 발로이스|엘리자베트 드 발루아]]는 본래 카를로스와 혼담이 오갔던 상대였다. 카를로스는 동갑내기 의붓어머니에게 호감을 가졌고 펠리페 2세는 아들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나 카를로스와 엘리자베트 사이에 부정한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당시 스페인의 유일한 후계자였던 카를로스에게는 여러 혼담 상대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고모 [[오스트리아의 후아나|후아나]],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메리 스튜어트]], 훗날 아버지의 네 번째 부인이 되는 [[오스트리아의 아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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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2세와 카를로스의 사이는 점점 나빠졌고 카를로스는 아버지에게 위해를 입을까 두려워해 방문을 안에서 잠글 수 있는 자물쇠를 만들게 했다. 또 베개 밑에 칼과 소총 등 무기를 숨겨놓기도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스페인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아들이 외국으로 도망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펠리페 2세는 [[1568년]] [[1월 18일]] 카를로스의 무기를 빼앗고 그의 방 창문에 못질을 해서 감금시켰다. 왕위 계승자를 구금한 이유에 대해 펠리페 2세는 왕자의 천성적인 결함과 자질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교황에게도 왕자의 생각에 결함이 많고 자질이 모자라 구금했다고 편지를 보냈다. 카를로스는 자신의 방에 감금당한 채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그로부터 몇 달 되지 않아 엘리자베트 또한 죽었다.
 
돈 카를로스와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의 이야기는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 및 [[실러]]의 희곡 《[[돈 카를로스 (희곡)|돈 카를로스]]》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 참고 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