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쿠스 3세 카에쿠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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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방스 왕 ===
[[887년]] [[1월 11일]] 아버지 보소가 죽자 그는 프로방스의 왕이 되었는데 나이가 어려 권력이 불안하였다. 섭정으로는 어머니 이르밍가르트와 삼촌 [[정의공 리샤르 오툉]]이 그를 대신하여 왕국을 다스렸다. 어머니 이르밍가르트는 아들과 함께 황제 뚱보왕 [[카를 3세]]에게 의탁하여 도움을 요청하였고, 어머니 이르밍가르트의 사촌이었던 [[카를 3세]]는 그를 양자로 삼고 왕으로 인정, 보호해 주었다. 또한 그에게 [[비엔나]] 백작의 작위도 내려주었다. 그러나 [[887년]] [[11월]] 카를이 조카 [[아르눌프 폰 케른텐|아르눌프]]의 쿠데타로 실각하고, [[888년]] [[1월]] 카를이 죽자, 다시 카를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케른텐의 아르눌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아르눌프는 그가 아르눌프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봉신이 되자될 것을 인정하자, 아르눌프는 [[890년]] 루도비쿠스를 [[아를]], [[프로방스]] 그리고 [[부르고뉴]]의 왕으로 인정해고 보호해 주었고, [[Visio Karoli Grossi]]를 작성하여 그를 [[카롤링거 왕가]]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랭스의 대주교 풀크에 의하면 901년 그가 황제로 즉위한 뒤에,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작성했다고도 한다. [[894년]] 루도비쿠스는 아르눌프의 봉신이 되었다.
 
루도비쿠스는 치세 동안 내내 사라센의 침입에 맞서 싸워야 했다. [[896년]] [[프로방스]]의 남부 해안가로 쳐들어온 [[사라센]]인 해적과 교전하였다. [[898년]]에는 프락시네트 해변가로 올라오는 사라센 군사를 맞아 교전하였다. 같은 해, 루도비쿠스는 [[아키텐]]을 방문했는데, 루도비쿠스의 여동생 엔젤베르그(Engelberge)는 [[아키텐]]의 공작이자 [[레온]], [[마콘]](Mâcon)의 백작인 [[경건한 윌리엄]]과 결혼하였다. 루도비쿠스는 [[비잔티움 제국]] 황제 [[레오 6세]]의 딸 [[비잔티움의 안나]]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은 그의 전임자들을 대하듯 그를 프랑크인의 황제로 여겼지 로마 황제로 간주하기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