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트 1세 (오세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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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1세(Conrad I, 800년경 - 864년/876년 [[3월 22일]] 또는 [[9월 21일]] 사망)는 [[프랑크 왕국]]의 유력 귀족으로, [[벨프 왕가]]의 시조인 [[구엘프 1세]]의 아들이었다. 프랑크 왕 [[루트비히 1세 (프랑크)|경건왕 루트비히]]의 후처인 [[바이에른의 유디트]], [[동프랑크 왕국]]의 군주 [[루트비히 2세 (동프랑크)|독일인 루트비히]]의 왕비 [[바이에른의 엠므]]의 친정오라비였다. 또한 [[루트비히 1세 (프랑크)|경건왕 루트비히]]의 다른 아들 [[로타르 1세]]는 동서간이었다.
 
[[859년]]부터 [[862년]]/[[864년]] 무렵까지 [[아르가우]], [[오세르]]의 [[백작]]이며 [[콘스탄스 호수]] 주변 지역의 영주였다. 또한 [[파리 (프랑스)|파리]]의 영주였으며 [[오세르의 생 제르맹 대수도원]]장이었다. 그는 9세기 중반 [[프랑크 왕국]]의 혼란기에 하부르고뉴에서 자립한 루돌프 가문의 선조이기도 하다. 별칭은 콘라트 1세 노인공(Conrad I the Eld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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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카를은 그들에게 관대한 혜택을 주었고, 대머리 카를은 콘라트에게 많은 지역의 백작직에 임명하였다. 858년에 그는 아르가우, 파리 백작에 임명되었고 오세르의 생제르맹 대수도원과 생 갈 수도원의 원장직에 임명되었다. 한편 [[독일]] [[루트비히 2세 (동프랑크)|독일인 루트비히]]는 [[바이에른]]에 있던 콘라트의 영지와 재산을 모두 압수해버린다.
 
864년 [[3월 22일]] 또는 [[9월 21일]]에 사망하였다. 일설에는 876년까지도 생존해 있었다 한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