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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개정(제령 제19호)하여 조선에서도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1940년]] [[2월 11일]]부터 [[8월 10일]]까지 '씨(氏)'를 정해서 제출할 것을 명령하였다.<ref name=jplaw>[http://www.lawnb.com/lawinfo/contents_view.asp?cid=8D2EBDEE762940678A696A78374DF9DD|0|K 조선민사령 (조선총독부제령 제19호, 1939.11.10 일부개정) 제11조제1항 단서·제3항 및 제11조의2]</ref>
 
일부 [[친일파]]들은 자발적으로 창씨개명에 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인의 희망에 따라 실시하게 되었다는 창씨개명은 [[1940년]] [[5월]]까지 창씨신고 가구수가 7.6%에 불과하자, [[조선총독부]]가 권력기구에 의한 강제, 법의 수정, 유명인의 동원 등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그 비율을 7981.3%로5%로 끌어올렸다.<ref name="daum01"/>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함으로써 조선인들은 일본식 씨(氏)로부터 해방되었다. [[1946년]], [[미군정]]과 [[소련군정]]의 '조선 성명 복구' 조치로 창씨(創氏)한 성씨는 폐지되었고, 창씨개명했던 조선인들은 본래의 성명을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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