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그레고리오 10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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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1년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그레고리오 10세는 몽골을 방문하고 온 니콜로 폴로와 그의 17살짜리 아들 [[마르코 폴로]]를 통해 몽골의 대칸 [[쿠빌라이 칸]]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 쿠빌라이 칸은 교황에게 선교사 백 명과 [[거룩한 무덤 성당]]의 등잔 기름 일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교황은 두 명의 수사와 약간의 기름만을 보내주었다. 몽골로 떠난 수사들은 얼마 안 가 되돌아왔다. 니콜로 폴로와 마르코 폴로 부자는 1275년 [[몽골 제국]]으로 다시 가서 교황이 쿠빌라이 칸에게 보낸 기름을 전달하였다.<ref>J.R.S. Phillips, ''The Medieval Expansion of Europe'' second edition (Oxford: Clarendon 1998), p. 113.</ref>
 
몽골의 [[일칸국]] 지도자 [[아바카 칸]]은 몽골과 유럽 간의 군사 협력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에 십여 명으로 구성된 외교 사절단을 파견했다.<ref>Peter Jackson, ''The Mongols and the West: 1221-1410'' (New York: Routledge 2014), especially pp. 167-196. B. Roberg, "Die Tartaren auf dem 2. Konzil von Lyon 1274," ''Annuarium historiae conciliarum'' 5 (1973), 241-302.</ref> 공의회가 폐회한 후, 아바카 칸은 재차 [[조지아 (국가)|조지아]] 사람인 바사리 형제를 서방 지도자들에게 외교 사절로 보내 군사들을 준비시켰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에 그레고리오 10세는 아바카 칸의 사절단에게 일칸국이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다면 군사 조직에 편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ref name=richard-465>Jean Richard, ''Histoire des Croisades'' (Paris: Fayard 1996), p.465</ref> 그러나 1276년 1월 10일 그레고리오 10세가 선종하면서 새 십자군 원정 계획은 사실상 좌초되었다. 십자군 원정을 위해 모은 자금은 이탈리아에 배분되었다.<ref>Jonathan Riley-Smith, "Atlas des Croisades", p.69 (English-language version: ''The Atlas of the Crusades'' (Facts-on-file 1991))</ref>
 
==제2차 리옹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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