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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국 해군은 다수의 전함을 보유하는 등 드레드노트 등장 이전부터 세계 1위의 해군국으로, 드레드노트를 보유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열강에 대한 확고한 우위를 점하나 싶었으나, 이 후 [[빌헬름 2세]] 치하의 [[독일 제국]]과의 노급전함 건조 경쟁으로 인하여 오히려 기존의 우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영국이 노급전함을 1대 만들면 독일은 2대를 만드는 식이었으므로 서로 지지않으려는 영-독 양국간의 이러한 군사적 긴장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간접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도 승전국들을 중심으로 전함 위주의 해군 군비경쟁은 계속되었고, 이에 유지비 등 심적, 물적 부담을 느낀 영국의 제안에 따라 [[1922년]] [[워싱턴 D.C.]] [[해군 군비 제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주요 열강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의 주력함 보유 비율이 10:10:6:3:3으로 고정되었고, 기존 함정의 대량 파기 및 신규함정의 건조 제한을 규정하였으며, 신조함(新造艦)의 크기 및 화력 상한선이 각각 35,000톤([[배수량]]기준) 및 주포 구경 16인치로 정해짐으로써 양 세계대전 사이동안 열강의 해군 전력은 정체되어 이른바 <해군의 휴일>을 맞았으나, 실상은 조약의 내용에 들어있지 않았던 그 외의 부분에서 보조 전력으로 더욱 치열하게 군비 경쟁이 일어났다.
 
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항공모함의 건조로, 사실 이 시기에 건조된 항공모함들은 대형 순양함이나 전함으로 건조 중이던 선체를 주력함 보유 쿼터로 인해 완성시킬 수 없게 되자 [[워싱턴 조약]]에 의해 항공모함으로 설계 변경이 인정된 것들이었다. 일찍부터 해군에 의한 항공기 운용에 관심 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주창으로 일본은 특히나 적극적으로 항공모함 건조에 열을 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