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Sjs17 6 (토론 | 기여)
25번째 줄:
예레미야서는 유다 왕국의 암흑기 때에 유다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들 중 한 사람의 심판설교에 대한 기록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을 불멸의 존재로 여기며 하나님 말씀을 마음놓고 어기던 유다를 향해 있을 야훼의 심판을 40년 동안 충실하게 선포했고, 그 대가로 박해 ,폭력 격리, 수감 등을 당했다. 흔히 예레미야에 대해 유다의 타락과 임박한 운명을 슬퍼한 '눈물의 예언자','섬세한 여성적인 예언자'라고 해석하는데, 이는 오해이다.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예레미야는 잘못된 성역에 맞선 역동적인 예언자,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 성전을 불멸의 존재로 여기던 잘못된 통념에 성전설교로 도전한 용감한 예언자였다.<ref name="116,117,122">같은 책, 116~117쪽, 122쪽.</ref>
 
 다윗살잏으로로 예배를 집중시킨 조치는, 야훼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토라는 경건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방법으로 전락했으며, 현상을 유지하는 방책으로 사용되었다. 예레미야는 이 거짓된 지혜를 규탄했다.
=== 타협없는 야훼의 말씀 전달 ===
 
[[바빌론]] 침략을 통한 [[야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그의 강력한 [[설교]]내용때문에, 심한 [[박해]]를 겪어야 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윗 왕조와 맺으셨다는 언약에 근거, 야훼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자만했는데,<ref name="116,117,122"/>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너희가 [[토라|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죄]]를 짓는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며 유다 백성들의 비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향인 아나돗에서 위협을 받았고,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는 거짓 예언을 하면서 대중들의 비위를 맞추는 거짓 예언자들에 의해서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으며<ref>이 백성이 주님을 부인하며 말한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재앙도 우리를 덮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란이나 기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타 그릭는 모훼의 주엊졌던달 ===
[[바빌론|바]] 침략을 통한 [[야훼바빌론|론]]계약신아을롱의한전환을 하나님의 심판이라는꾀하나님했다심판이라는 그의 강력한 [[설교]]내용때문에, 심한 [[박해]]를 겪어야 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윗 왕조와 맺으셨다는 언약에 근거, 야훼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자만했는데,<ref name="116,117,122" />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너희가 [[토라|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죄]]를 짓는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며 유다 백성들의 비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향인 아나돗에서 위협을 받았고,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는 거짓 예언을 하면서 대중들의 비위를 맞추는 거짓 예언자들에 의해서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으며<ref>이 백성이 주님을 부인하며 말한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재앙도 우리를 덮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란이나 기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야, 이러한 예언자들에게는, 내가 아무런 예언도 준 일이 없다. 그들의 말은 허풍일 뿐이다,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예언을 하며, 제사장들은 거짓 예언자들이 시키는 대로 다스리며, 나의 백성은 이것을 좋아하니, 마지막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예레미야 5:12,31 새번역)</ref>, [[여호야김]] 왕에게 위협을 느껴 도피했고, 거짓 평화를 외치는 예언자인 하나냐에 의해서 공적으로 모욕을 받았으며 웅덩이에 던져지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예언활동 초기로부터 여호야김 왕 4년에 이르기까지의 자신의 모든 예언들을 기록하도록 그의 서기였던 [[바룩]]에게 구두로 서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