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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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al and life (토론 | 기여) 인물의 출생연도를 개인이 임의대로 확정짓는 행위는 역사왜곡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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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백제의 역대 국왕|백제의 18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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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왕'''(腆支王,
[[일본]]에 있던 중 [[405년]] 아버지인 [[아신왕]](阿莘王)이 붕어하자 첫째 숙부 [[부여훈해]](扶餘訓解)가 임시 [[섭정]]을 맡았으나 막내 숙부 [[부여설례]](扶餘碟禮)가 [[부여훈해]](扶餘訓解)을 시해하고 후임 임시 [[섭정]]을 맡고 있었는데 [[해충 (백제)|해충]](解忠)이 [[부여설례]](扶餘碟禮)를 몰아내어 주살한 후 백제에 도착한
《[[일본서기]]》에는 [[아신왕]]이 죽자 학자 [[아직기]]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즉위했다는 기록이 있어 [[아직기]]가 전지왕이라는 학설도 존재한다.<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3580 네이버캐스트 - 왕인].</ref>
== 생애 ==
《[[삼국사기]]》 의 [[아신왕]], 전지왕 본기에 의하면 [[394년]]([[아신왕]]
이복 동생인 부여신 등 다른 형제들이 몇 명 더 존재하였다.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에 의하면 그는 [[아신왕]] 재위 중 일본에 보내졌다 한다. [[일본서기]] 제10권 오진 천황조에 의하면, "[[405년]] [[9월]] 아화왕([[아신왕]])이 서거하다. 천황이 직지(전지) 왕자를 불러 이르기를 "그대는 [[백제]]로 돌아가 왕위를 계승하라."고 하였다.<ref>손해일, 《왕인의 달》 (한국문학도서관, 1997) 102페이지</ref>" 한다. 그는 오오진 천황이 내준 왜의 군사들을 대동하고 귀국, 설례 일파를 제거하고 16세에 왕위에 올랐다. 이 부분이 [[아직기]]가 전지왕이라는 근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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