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리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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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마리아를 열네 살의 호노리우스에게 시집보낸 것도 그 포석이었을 거라는 설명이다. 알라리크를 마케도니아에서 패배시킨 일도, 스틸리코가 사실은 알라리크가 영토로 차지하고 있던 다르마티아의 속주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지적이 있다. 로마가 하드리아노폴리스의 전투(378) 이후 고트족에게 잃은 다르마티아는 매우 풍요로운 토지로 당시 재정난으로 고민하던 스틸리코에게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만약 이 두 가설이 사실이라면, 같은 입장에 있던 스틸리코와 루피누스의 대립관계도 이해하기 쉬워진다. 호노리우스의 시아버지이기도장인이기도 했던 스틸리코가 더 이상 황제의 지위에 가까워지지 못하도록, 또 비옥한 다르마티아를 스틸리코가 차지하지 못하도록 동로마의 루피누스는 그의 병력을 없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동ㆍ서 로마의 황제에게 있어 야만족의 수장 알라리크가 로마와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은 반(半)야만족 인사였던 스틸리코를 대신할 인물이 나타났음을 의미했다. 지위나 혈연도 황제에게 가까웠을 뿐 아니라 스스로 황제와 대적할 힘도 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스틸리코가 동ㆍ서 로마의 경계심을 살 만한 경솔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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