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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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정보
|분쟁 = 플라시 전투
|전체 = [[7년 전쟁]]
|그림 = Map of BengalClive.svgjpg
|그림크기 = 320px
|장소 = [[인도]] [[벵골]] 플라시
|결과= 영국의 승리, [[무굴 제국]]의 교역자로 부상, [[청불 전쟁]]의 원인
|날짜 = 1757년 6월 23일
|교전국1=
|결과 = 영국의 승리
[[파일:Union flag 1606 (Kings Colors).svg|center|90px]]<center>[[그레이트브리튼 왕국]]</center><br />
* [[벵골]]이 영국 동인도 회사의 영토에 편입
|교전국2=[[파일:Pavillon royal de France.svg|center|95px]]<center>[[부르봉 왕조|프랑스 왕국]]</center><br/ >
*
*
|교전국1= {{국기|영국|1606}}
* [[영국 동인도 회사]]
|교전국2= {{국기|프랑스 왕국}} <br/ >
{{국기|무굴 제국}}
* [[벵골 수바국]]
|지휘관1= {{국기그림|영국|1606}} [[제1대 클라이브 남작 로버트 클라이브|로버트 클라이브]]<br/ >
{{국기|영국|1606}} [[에이레 쿠테]]
|지휘관2= {{국기그림|무굴 제국}} [[시라즈 우드다둘라]]<br/ >
{{국기그림|무굴 제국}} [[미르 자파르]]<br/ >
{{국기그림|프랑스 왕국}} [[몽셰르 시프레]] <br/ >
}}
'''플라시 전투'''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벵골 토후국]]과 [[프랑스 동인도 회사]]를 상대로 거둔 결정적인 승리로,<ref name="cite wdl|2384">{{cite web |url={{wdl|2384}} |author=Campbell, John |author2=Watts, William |date=1760 |title=Memoirs of the Revolution in Bengal, Anno Domini 1757 |work=World Digital Library |accessdate=30 September 2013 }}</ref> 1757년 6월 23일 발발했다. [[7년 전쟁]]의 일환이었던 이 전투는 [[벵골]] 내에서 영국의 주도권을 확실시하게 되었고, 이후 100년간 [[인도]] 전체를 지배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플라시 전투'''는 1757년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 [[벵골]] 지방에서 벌인 전투이다.
== 배경 ==
[[네덜란드]]가 물러난 후 [[영국 동인도 회사]]는 [[무굴 제국]]의 상업권을 두고 [[프랑스]]와 경쟁했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보다 더 많은 인구와 상권을 자신의 세력에 편입시켰고, [[벵골]]을 중심으로 무굴 제국 전체를 통치하고자 했다. 이는 영국과 무굴 제국이 손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프랑스가 무굴 제국 변방의 주요 왕국을 동맹 관계로 성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투는 [[캘커타]]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져 있고 벵골 수바국의 수도였던 [[무르시다바드]] 남쪽에 위치한 [[후글리 강]]의 강둑에 위치한 [[팔라시]]에서 벌어졌다. [[시라즈 우드다둘라]]의 벵골군과 영국 동인도 회사가 교전했다. 시라즈 우드다둘라는 1년 전 벵골의 태수가 되었고, 그는 영국인들에게 요새화 확장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제1대 클라이브 남작 로버트 클라이브|로버트 클라이브]]는 시라즈 군대의 사령관인 [[미르 자파르]]에게 뇌물을 전했고, 그에게 벵골의 태수 자리를 약속했다. 그는 1757년 플라시에서 시라즈를 무찌르고 캘커타를 점령했다.<ref>{{cite web|last1=Robins|first1=Nick|title=This Imperious Company&nbsp;— The East India Company and the Modern Multinational&nbsp;— Nick Robins&nbsp;— Gresham College Lectures|url=http://www.gresham.ac.uk/lectures-and-events/this-imperious-company-the-east-india-company-and-the-modern-multinational|website=Gresham Colelge Lectures|publisher=Gresham College|accessdate=19 June 2015}}</ref>
== 경과 ==
프랑스 군은 그 지역의 [[토후]]와 벵골의 태수 정규군과 연합하여 영국군을 격파하려고 하였다. 영국군은 네덜란드와 무굴 제국과 연합하여 프랑스를 고립시키려고 하였다. 1757년, 영국의 [[로버트 클라이브]] 장군은 3000명의 군대로 벵골로 진격했으며 벵골의 플라시에서 프랑스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플라시 전투에서 3000명의 영국군은 7만명의 프랑스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전투는 영국이 점령한 캘커타에 시라즈 우드다둘라가 공격을 가하고 [[블랙홀 학살]]을 저지른 것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은 클라이브 남작과 [[찰스 왓슨]]을 [[마드라스]]에서 파견해 벵골로 진격했고, 캘커타를 탈환했다. 클라이브는 [[찬다나가르 전투]]에서 프랑스 요새를 포위하는 계획을 개시했다.<ref name=Naravane>{{Cite book |last=Naravane |first=M.S. |title=Battles of the Honorourable East India Company |publisher=A.P.H. Publishing Corporation |year=2014 |isbn=9788131300343 |pages=38}}</ref> 시라즈 우드다둘라와 영국인들 사이의 긴장과 의심이 플라시 전투로 폭발한 것이었다. 이 전투는 [[7년 전쟁]] 도중에 발발했고, 유럽 내 라이벌이었던 [[프랑스 동인도 회사]]가<ref name="cite wdl|2384"/> 영국에 맞서기 위해 소규모 부대를 파견했다. 시라즈 우드다둘라는 수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영국군은 수적 열세를 우려하여 시라즈 우드다둘라의 장군들인 미르 자파르, 야르 루투프 칸, 자가트 세스 등과 음모를 맺었다. 전투는 11시간 만에 끝났다.
== 결과 ==
 
=== 영국의 인도 지배권 확립 ===
== 배경각주 ==
{{각주}}
 
[[분류:1757년 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