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터브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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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번과 마가렛 ==
=== 1200달러의 획득===
=== 1200달러를 손에 넣다 ===
[[1859년]] 초, 노예 폐지론자인 [[윌리엄 H. 수어드]]상원의원이 터브먼에게 [[뉴욕 오번]] 외곽에 있는 작은 땅을 1200달러에 팔았다.<ref>Larson, p. 163.</ref> 그 도시는 반노예주의의 온상이었으며, 터브먼은 그의 부모를 캐나다의 혹한으로부터 데리고 나왔다.<ref name="Cli117">Clinton, p. 117.</ref> 미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도망노예송환법에 의해 그들이 남부로 다시 송환될 수 있는 위험에 놓인다는 것이었으며, 터브먼의 형제들 역시 거부감을 보였다. 캐서린 클린턴은 [[드레드 스콧 판결]] 사건으로 인한 분노가 터브먼을 미국으로 다시 데려온 것이라고 보았다.<ref name="Cli117"/> 오번의 그의 지역은 터브먼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몇 년간, 그는 친척들과 다른 흑인들을 위해 안전한 곳을 찾아주었다.<ref name="Larson"/>
 
=== 마가렛 ===
오번 땅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터브먼은 메릴랜드로 가 그의 “조카”인, 마가렛이라는 8살 난 흑인 소녀를 데리고 왔다.<ref name="Cli117"/> 이 여행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미스터리에 쌓여있다. 마가렛의 부모에 관한 것도 일치되는 이론은 없으나, 터브먼은 그들이 자유 흑인이었다고 말하였다. 마가렛은 메릴랜드에 자신의 집과 쌍둥이 오빠를 두고 오게 되었다.<ref>Larson, p. 197.</ref> 몇 년 후, 마가렛의 딸 앨리스는 터브먼의 행동을 이기적이라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안전한 집에 있던 소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데려다놓았다.”<ref>Quoted in Clinton, p. 119.</ref> 실제로, 앨리스는 이 일을 “납치”라고 표현하였다.<ref>Larson, p. 197에서 인용</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