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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9년 예루살렘을 탈환하려는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을 아스칼론에서 격파했으나, 레몽과는 친구사이였기 때문에 [[아스칼론]]을 탈취하지는 않았다. 성당기사단에게 [[솔로몬 왕]]의 신전 아래에 있는 상그리엘 문서들을 회수해 오라고 지시하였다.<ref name="댄 브라운"/> 그는 상그리엘 문서를 통해 자신이 메로빙거 왕조의 정당한 계승자임을 입증하려 하였다.<ref name="댄 브라운"/> 예루살렘 총대주교였던 [[다임베르트]]는 예루살렘을 교황령으로 만들기를 원했기에 대립했다. 결국 고드프루아가 이집트를 빼앗아 왕국을 만들고 난 뒤에 예루살렘을 교황령으로 만들자고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나, 이집트 침공을 계획하던 중 1100년 7월에 죽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선 의문점이 있다. 보에몽과 다임베르트가 짜고 예루살렘을 차지하려고 하는 가운데, [[의문사]]했기의문사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확실치 않고, 기록마다 다른데, 단순 병사, 암살자의 화살에 맞고 피살당했다, 독살을 당했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동생 [[에데사 백국|에데사 백작]]이었던 보두앵이 뒤를 이어 예루살렘 왕이 되었다.
 
고드프루아는 사후에 영웅화되어, 십자군 최고지도자, 가장 우수한 전사로써 음유시인의 이야기가 되어, 바그너의 가극 [[로엔그린]]에서 알려진 백조의 기사의 자손이라고 일컬어지나, 실상은 십자군 지도자 중 1명에 불과하고, [[타란토의 보에몽]], [[생질의 레몽]], [[아데마르|교황사절 아데마르]]가 중심인물이었다고 보면 되었다. 사실 예루살렘의 주인으로 추대된 것도 가장 중립적이고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