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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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의 역사==
[[센고쿠 시대]]의 아이즈 지방은 [[센고쿠 다이묘]] [[
그러나 가게카쓰도 [[세키가하라 전투]] 때 [[이시다 미쓰나리]]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1601년]]에 [[요네자와 번]] 24만 석으로 삭감 전봉되었고,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측에서 싸웠던 가모 히데유키는 고쿠다카가 60만 석으로 추가되어 아이즈로 돌아올 수 있었다. 히데유키의 뒤를 이은 [[가모 다다사토]]가 [[1627년]] 급사하자, 후사가 없어 영지가 몰수될 뻔하였으나, 그 어머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딸인 관계로, 동생 [[가모 다다토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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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 말기, 마지막 번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는 [[1862년]]에 [[교토슈고쇼쿠]]를 맡았고 [[신센구미]]를 휘하에 두어, 존왕양이파 지사들의 관리와 [[교토 시|교토]] 치안유지를 담당했다. [[금문의 변]] 때는 [[고메이 천황]]을 탈취하려는 [[조슈 번]] 세력으로부터 궁궐을 지켜냈다. 이후 가타모리는 고메이 천황으로부터 아이즈 번에 의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받았다. 고메이 천황 사후, [[대정봉환]], [[메이지 유신|왕정복고]]를 거쳐 [[보신 전쟁]]이 발발하자, 가타모리는 구 막부 세력의 중심으로 여겨지면서 신정부군의 주적이 되었고, 고메이 천황의 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적(朝敵)으로 간주되었다. 아이즈 번은 [[오우에쓰 열번동맹]]의 지원을 받아 [[쇼나이 번]]과 함께 동맹을 체결하고 신정부군에 대항하였으나, [[아이즈 전쟁]]에서 패배하고 결국 항복하였다. 아이즈 번 영지는 이때 몰수되었고, 가타모리는 금고형에 처해져 [[돗토리 번]]에 유폐되었다. [[1869년]], 메이지 정부는 가타모리의 아들 [[마쓰다이라 가타하루]]가 가문의 명맥을 잇는 것을 허락하고 [[도나미 번]]을 세우게 했지만, 아이즈 지역은 메이지 정부의 직할지가 되었고, 와카마쓰 현이 설치되었다가 [[1876년]]에 [[후쿠시마 현]]에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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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의 번}}
[[분류:아이즈 번| ]]
[[분류:일본의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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