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선언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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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다. [[일본 제국]]에 강제로 병합된 조국을 독립시키고자 [[손병희]]를 비롯한 33명의 민족대표는 세계 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계획을 세웠다. 33명의 대표는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명월관에서태화관(요릿집)에서 회동을 가졌으며 [[한용운]]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러나 총독부에 자진 투옥함.
 
이에 앞서 [[2월 26일]] ‘보성사’에서 2만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2월 28일]]에 1,500여 장을 학생들에게 분배하고 나머지를 그 밖의 각처와 각 지방에 분배했다.<ref name="글로벌 세계 대백과" /> [[탑골공원]]에서는 [[정재용 (1886년)|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서 낭독하였다.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로, 전국적 만세시위운동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선언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어, 2016년 10월 20일 2건의 문서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664-1호, 제664-2호로 각각 지정하였다. <ref name="관보제18867호-문화재청고시제2016-90호" />
 
== 각주 ==
{{각주 | ref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