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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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이후 [[제2차 세계대전1945년]] 당시요시프 [[유고슬라비아]]는브로즈 [[나치 독일]]에 의해 분할 통치됐으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티토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소련]](Josip Broz지원을 Tito)가통해 [[왕정]]을군주제를 폐지하고 [[1945년]]에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등 6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 연방)'을 수립했다. 또한[[1946년]]에는 공산주의 신헌법을 제정했으며 [[1974년]]에는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와 [[코소보]]를 연방직할 자치주로 승격시켰다. 이로써 유고슬라비아는 동유럽의 가장 부유한 공산 국가로 발전했다.
[[1943년]] [[11월 29일]]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 등 6개 공화국과 [[보이보디나 사회주의 자치주]] 및 [[코소보 사회주의 자치주]] 2개의 세르비아 자치주로 구성되었다.
 
국가원수에 취임한 티토는 1948년 민족주의를 주장, 소련의 지도권을 부인하다가 [[코민포름]]에서 제명된 후 "독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공산주의"를 지향하였다. 비동맹 중립주의, [[미국]]·소련의 권력 정치 배격으로 대표되는 [[티토주의]]는 동구권에서 서방권 측과 관계 개선을 도모한 이단자로 규정되었으나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점하였다.
6세기경 남(南)[[슬라브족]]이 [[발칸 반도]]로 이주한 이래, [[알렉산더대왕]]이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을 비롯한 발칸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한 이후로도 [[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아 왔다.
 
유고슬라비아는 동유럽·중앙유럽의 여타 [[공산주의 국가]]와 달리 [[바르샤바 조약]]에도 [[경제상호원조회의]]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북대서양 조약기구]]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지도 아래 [[비동맹 운동]] 노선을 걸었다. 그래서 티토의 자주적인 정치노선을 [[티토주의]]라고 부른다. [[1971년]]부터 [[1973년]] 사이에 전개된 브레즈네프·코시긴 등 소련 수뇌부와 티토 간의 상호 교환 방문과 1977년 소련의 불간섭 원칙의 확인으로 양국 관계가 호전되었으며 1970년대 대서방 접근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기업 자주영리·이윤제 등 [[시장경제]] 구조를 도입, 독자적인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추진함으로써 1970년대에는 경제적 발전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유고슬라비아는 동유럽의 가장 부유한 공산 국가로 발전했다.
13세기 무렵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간 '문화의 교차점'이었던 [[발칸 반도]]에는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 작은 공국들이 형성됐으나, 역사적으로 주변국과의 이해 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 [[5월]]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사망과 함께 분열 조짐을 보이며 연방 간부 회의 집단 지도 체제로 이행되다가,전환하였다. 연방의회는 연방원과 공화국·자치주원의 양원제였다. [[1987년]]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가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하면서 유고 연방의 내전이 촉발되었다.
14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문명이 들어서자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스 정교]], [[이슬람교]] 등 3개 종교와 [[알바니아]]계, [[그리스]]계, [[터키]]계, [[불가리아]]계, [[세르비아]]ㆍ[[크로아티아]]계 등 5개 민족, 4개의 언어, 2개의 문자권이 혼재되면서 발칸 반도의 민족적ㆍ종교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18세기 말 남슬라브족의 민족 해방 운동을 통해 [[그리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등이 단일 국가로 독립했으나, [[마케도니아]]는 영토 확장을 위한 요충지로 잦은 침략을 받았다. 특히 1880년대부터 그리스, 세르비아, 불가리아 3국의 마케도니아 지배권 분쟁으로 인해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이 발발하였고, [[마케도니아]] 영토는 [[그리스]]와 [[세르비아]]에 분할됐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으로 [[세르비아]]ㆍ[[마케도니아]]ㆍ[[몬테네그로]]ㆍ[[크로아티아]]ㆍ[[슬로베니아]]ㆍ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ㆍ보이보디나를 통합하여 [[1918년]] [[발칸반도]]에 연합국가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이 형성되었고, [[1929년]] '남슬라브족의 나라'를 뜻하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국명을 변경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나치 독일]]에 의해 분할 통치됐으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가 [[왕정]]을 폐지하고 [[1945년]]에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등 6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 연방)'을 수립했다. 또한 [[1974년]]에는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와 [[코소보]]를 연방직할 자치주로 승격시켰다. 이로써 유고슬라비아는 동유럽의 가장 부유한 공산 국가로 발전했다.
 
유고슬라비아는 동유럽·중앙유럽의 여타 [[공산주의 국가]]와 달리 [[바르샤바 조약]]에도 [[경제상호원조회의]]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북대서양 조약기구]]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요시프 브로즈 티토|요시프 티토]]의 지도 아래 [[비동맹 운동]] 노선을 걸었다. 그래서 티토의 자주적인 정치노선을 [[티토주의]]라고 부른다.
 
[[1980년]] [[5월]]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사망과 함께 분열 조짐을 보이며 집단 지도 체제로 이행되다가, [[1987년]]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가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하면서 유고 연방의 내전이 촉발되었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동유럽 공산정권이 차례로 몰락하자 유고 연방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의 구성 공화국이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공화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차례로 분리 독립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치른 후 [[1992년]] 남은 공화국인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신 유고 연방)을 결성하면서 구유고 연방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한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대통령으로 하여 [[1992년 4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2개 공화국, [[보이보디나]]와 [[코소보]] 2개 자치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신 유고 연방)'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 공화국]]이 신 유고 연방에서 독립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2002년]] [[유럽연합]](EU)의 중재로 연방 해체에 합의했다. 그리고 [[몬테네그로]]는 [[2015년]] [[12월 2일]]에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하였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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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권}}
{{유고슬라비아 연대표}}
{{Authority control}}
 
{{Authority control}}
[[분류:유고슬라비아의 냉전사]]
[[분류: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