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 (조선 영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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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박해]] ===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정학동안 ‘정학(正學)이 밝아지면 사학(邪學)은 저절로 종식될 것이라고 ’며것이라고’며 [[천주교]]를 묵인한 정조와는 달리 천주교를 강경하게 탄압하였다.
 
급기야는 [[1801년]] [[음력2월 22일]] ([[음력 1월 10일]]), 사학(邪學,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의 엄금을 하교하여 세계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큰 교회박해인 [[신유박해]](辛酉迫害)를 일으켰다.
 
아래는 [[1801년]] [[2월 22일]]([[음력 1월 10일]]), 천주교 엄금에 관해 정순왕후가 하교한 내용이다.
 
{{인용문|“선왕(先王)께서는 매번 정학(正學)이 밝아지면 사학(邪學)은 저절로 종식될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듣건대, 이른바 사학이 옛날과 다름이 없어서 서울에서부터 기호(畿湖)에 이르기까지 날로 더욱 치성(熾盛)해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