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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있었던 계획은 근본적으로 기존 네트워크에 지선을 추가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지하철 사각지대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만으로도 지하철을 건설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서울의 통행특성에 대하여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고속 간선망을 설계한 것이었다. 이미 [[1기 지하철]]만으로도 출퇴근시간대에는 매우 높은 혼잡도를 보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2기 지하철에서 들어오는 인파까지 더해진다면 그 혼잡도는 더욱 극심한 것이 될 것이었다. 더욱 많은 통행(목표치는 총여객수송량의 50%였음)을 지하철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더 많은 간선망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간선망은 되도록이면 도심을 관통해야만 했다. 서울에서도 이제 직주분리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었고, 통근통행과 업무통행은 도심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강남으로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지역으로 진입하는 [[1기 지하철]]의 통행량을 분담하기 위해서라도 간선망은 도심이나 강남을 통과하여야만 하였던 것이다. 물론 지하철 사각지대에 대한 배려가 이미 간선망이 어느 정도 이뤄진 시점에서 이뤄지고 있는 2기 지하철의 노선계획에서 빠져서는 안되었다. 굴곡노선이나 짧은 역간거리가 2기 지하철에서 상대적으로 눈에 많이 띄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러한 기조를 띤 계획이 [[1989년]] 서울시가 [[국토개발연구원]]에 발주한 용역에서 나온 결과였고, 여기서 개설해야한다고 논의된 노선은 [[서울 지하철 2호선|2]]·[[서울 지하철 3호선|3]]·[[서울 지하철 4호선|4호선]] 연장과 [[서울 지하철 5호선|5]]·[[서울 지하철 6호선|6]]·[[서울 지하철 7호선|7]]·[[서울 지하철 8호선|8]]·[[서울 지하철 9호선|9호선]]의 총 길이 약 204Km의 노선이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2호선]]의 경우에는 [[군자차량사업소|군자기지]]의 용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정차량사업소|신정기지]]의 건설과 본선 연결이 주된 이유였고, [[서울 지하철 3호선|3]]·[[서울 지하철 4호선|4호선]]은 입주가 진행되었으나 지하철이 없어 교통난을 겪고 있던 개포 및 노원 일대에 지하철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도심 관통 간선망으로 기획된 것은 [[서울 지하철 5호선|5]]·[[서울 지하철 6호선|6]]·[[서울 지하철 7호선|7호선]]이었으며 [[서울 지하철 8호선|8호선]]은 서울 동남부의 연결 및 [[광주대단지]] 계획 당시부터 구상되어 [[1971년]] 8월에 있었던 수도권 전철망 구성 계획에도 포함되어있던 성남전철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만 이 노선은 [[분당선]]과의 경합을 피하기 위하여 성남 구시가를 두루 관통하는 노선이 되었다.
 
한편 교직류 양용차량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또한 토목 및 건축 비용 감소를 위해 2기지하철은 교외 전철과의 직결운행을 염두에 두지 않고 계획되었다(서울지하철건설삼십년사, 서울시:2003).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기 지하철 차량의 높이는 4750mm인 데 반해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차량의 높이는 4900mm에서 5000mm인 경우를 들 수 있다<ref> 운영 회사 제공 자료 참조.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차량 제원 http://smrt.co.kr/smrt_smrt/general/system/carriage_1.jsp?m1=3&m2=8,
*서울메트로의 차량제원 http://www.seoulmetro.co.kr/bi/bi_main.jsp?subPage=bi_2_2.jsp&m_def=7&ss_def=4&leftM_def=2&leftS_def=2 </ref>.
 
=== 완공 ===
1990년 시작한 2기 지하철의 공사는 [[1995년]] [[11월 15일]] 5호선 [[왕십리역|왕십리]] - [[상일동역|상일동]]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일산선]]이 개통된 해인 [[1996년]] [[12월 30일]], 마침내 2기 지하철의 최초 노선인 [[서울 지하철 5호선|5호선]]이 완전 개통되었다. 같은 해인다음해인 1996년1997년, [[서울 지하철 7호선|7호선]] [[장암역|장암]] - [[건대입구역|건대입구]] 구간과 [[서울 지하철 8호선|8호선]] [[잠실역|잠실]] - [[모란역|모란]] 구간도 개통되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1997년]] 여름 [[타이]], [[말레이시아]] 등을 시작으로 외환 위기가 불어닥쳤고, [[대한민국]]도 이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상당액의 외화를 차입하였다. 이 사건으로 [[3기 지하철]] 계획안은 [[서울 지하철 9호선|9호선]]및 3호선 오금연장안만 원활하게 진행되었을뿐 11호선은 [[신분당선]]으로 단축, 10호선과 12호선은 폐기 되었으며, 2기 지하철 공사도 진척되고 말았다. 그러나 국민들의 노력으로 외환 위기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1999년]] [[7월 2일]] [[서울 지하철 8호선|8호선]] 완전 개통, [[2000년]] [[8월 1일]] [[서울 지하철 7호선|7호선]] 완전 개통, 그리고 공사가 진척되던 [[서울 지하철 6호선|6호선]]이 [[12월 15일]] 최후로 개통되면서 2기 지하철의 공사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에 추가하실 설명은 3기 지하철 문서에 해주세요.-->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