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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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King George I by Sir Godfrey Kneller, Bt.jpg
|그림설명 =
|서명 = George I Signature.svg
|문장 = Coat of Arms of Great Britain (1714-1801).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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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자3 = [[조지 2세|게오르크 2세]]
 
|휘 = 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별호 =
|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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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루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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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1세'''(George I, [[1660년]] [[5월 28일]] ~ [[1727년]] [[6월 11일]])는 [[영국]] [[하노버 왕가]]의 시조로 재위기간은 [[1714년]] [[8월 1일]]부터 [[1727년]] [[6월 11일]]까지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국 중 하나인 [[하노버 선제후국]]의 선제후이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팔츠의 조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왕 [[제임스 1세 (잉글랜드)|제임스 1세]]의 외외증손자(딸의 외손자)가 된다.
 
23세 때 사촌 누이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도로테아]]와 결혼했고, [[조지 2세]]와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조피 도로테아]](훗날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2세]]의 어머니)를 뒀다. 그러나 결혼 13년 만에 아내의 부정(不貞)을 이유로 즉시 이혼하고 [[알든 성]](城)에 유폐한 후, 자신의 정부(情婦) [[멜루지네 폰 슐렌부르크]]와의 사이에서 세 딸 안나 루이즈 조피, 멜루시나, 그리고 마르가레테 게르투르트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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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 제정된 [[영국 왕위계승법]]으로 제임스 1세의 손자인 어머니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3순위가 됐다. 그보다 앤 여왕에 더 가까운 친척들도 50인 이상 있었으나 영국 왕위계승법은 카톨릭 신자의 왕위 계승을 원천 금지하고 있어, 조지 1세와 그 어머니가 앤 여왕의 가장 가까운 신교도 혈육으로서 왕위 계승자에 이름을 올렸다.
 
[[1714년]] [[7월 8일]]에 어머니가 향년 84세로 죽자 차기 계승자가 됐고, [[그레이트브리튼의 앤|앤]] 여왕이 같은 해 [[8월 1일]] 후사 없이 향년 49세에 비만으로 인한 당뇨 합병증 등의 원인으로 서거하자 54세의 나이에 영국 왕에 올랐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점차 각의를 주재하지 않게 됐고, [[1721년]]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에게 전권을 줘 각의를 주재하게 하면서, 이른바 '각의의 수석'(Primius inter pares, the first in equals)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는 동시에 '군주는 군림하지만,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확립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의원내각제]]와 [[입헌군주제]]가 영국에서 뿌리내렸다.
 
[[1727년]] [[6월 11일]] 당뇨 합병증의 원인으로 서거 후 시신은 그가 태어난 하노버 라인 궁(Leineschloss) 헤렌하우젠 정원(Herrenhausen)에 묻혔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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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군주}}
 
{{Authority전거 control통제}}
{{기본정렬:조지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