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틸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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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아틸라는 [[434년]]부터 죽을 때까지 18년 정도, [[유럽]]에서 최대의 제국을 지배했으며, 그의 제국은 중부 유럽부터 [[흑해]], [[도나우 강]]부터 [[발트 해]]까지 이어졌다. 그는 그의 삼촌 루아가 죽자 그의 형 [[:en:Bleda|블레다]](Bleda)와 공동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설과 블레다가 실질적인 왕이고 아틸라는 2인자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설이있다. 어찌되었건 아틸라와 블레다는 서로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였는데 [[443년]] 블레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블레다의 죽음에 관해서는 아직 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사냥 도중 사고로 인한 죽음이라는 설과 아틸라가 암살했다라는 설이 있다. 블레다가 죽은 뒤 아틸라는 훈족의 유일한 왕으로 인정받게 된다. 아틸라는 동로마를 공격 콘스탄티누스의 고향인 나이서스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한편 동로마의 수많은 도시를 침공하여 동로마 에게서 막대한 돈을 공물로 받게 되었다.
[[450년]], 동생을 황제 자리에서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동로마로 추방된 서로마 [[발렌티아누스 3세]]의 누이 [[호노리아]]가 아틸라에게 구혼한다. 이에 아틸라는 청혼에 응하며 그 지참금으로 서로마 제국의 반을 요구한다.
아틸라는 [[451년]] 군대를 이끌고 [[갈리아]](현재의 [[프랑스]])로까지 진격, [[오를레앙]]까지 나아갔으나 [[카탈라우눔 전투(샬롱 전투)]]에서 로마의 장군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를 만나 퇴각한다.
이후 [[452년]]에 이루어진 2차 원정에서는 이탈리아를 공격하였는데, 결국 서로마의 [[발렌티아누스 3세]] 황제를 수도 [[라벤나]]에서 몰아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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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에 끼친 영향 ==
아틸라의 명성과 그에 대한 공포는 전 유럽에 확산되었다. 이탈리아, 갈리아, 게르만, 영국, 스칸디나비아에서 그를 소재로 한 수많은 소설과 전설, 그림, 연극, 오페라, 조각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후에 유럽의 역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생각되어, 역사가들은 아틸라를 위대하고 고귀한 왕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아틸라는 세 편의 노르드 [[사가 (문학)|사가]](saga)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니벨룽겐의 반지]]에서는 훈족의 왕 에첼로 등장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에서는 중세 그리스도교의 영향으로 아틸라는 잔인한 야만인 왕으로 기억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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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숭}}
{{Authority전거 control통제}}
 
[[분류:406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