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데 디 카노사 디 토스카나 여변경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HotCat을 사용해서 분류:토스카나 변경백 추가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60번째 줄:
아내가 감옥에 갇히게 되자 고드프리는 하인리히 3세를 [[이탈리아]]에서 몰아내고 반란을 부추기기 위해 [[독일]]로 돌아가 [[플랑드르의 보두앵 5세]]와 황제를 압박한 결과 [[하인리히 3세]]가 곧 사망하는 1056년 중반까지 평화로운 시기가 오게 되었다.
 
마틸데의 가문은 11세기 [[교황 스테파노 9세]], [[교황 니콜라오 2세|니콜라오 2세]], [[교황 알렉산데르 2세|알렉산데르 2세]]로 이어지는 교황 선출 논쟁에 연관되게 된다. 그녀는 [[1059년]] 교황 반대파로부터 니콜라오 2세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의 군대와 함께 교황을 수행하며 로마로 첫 여행을 떠나게 된다.
 
마틸데는 아르뒤노 델라 파둘레의 후견 아래 승마와 무술을 배웠으며, 이 기간 중 마틸데는 의붓오빠 고드프리와 결혼하여 1071년 딸 베아트리체를 낳는다. 사실상 존재하는 모든 마틸데의 전기에는 베아트리체가 첫 돌이 지나기 전에 사망하였다 하나, 미켈란젤로와 동시대의 보학자들은 베아트리체가 생존하였다 주장하였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 자신도 마틸데와 베아트리체의 후손임을 주장하였다. 당대의 카노사 백작도 미켈란젤로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미켈란젤로가 유산을 탐낸 것으로 보고 마틸데는 후손이 전혀 없다 단정하였다.
 
[[고드프리 4세]]는 아버지인 [[고드프리 3세]]가 [[1069년]] 사망한 후, 마틸데와 사이가 소원해져, [[독일]]로 돌아가 하 [[로렌]](Lower Lorraine)의 공작이 된다.
71번째 줄:
 
== 죽음 ==
이탈리아 정치의 한 시대를 풍미하던 마틸데는 1115년 통풍으로 사망한다. 그녀가 사망한 해, [[피렌체]]의 시민들이 봉기하여 독립, [[피렌체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7세기 그녀의 유해는 바티칸으로 옮겨져 현재 [[성 베드로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마틸데와 [[하인리히 4세]]의 이야기는 [[루이지 피란델로]]에 의해 희곡 [[엔리코 4세 (희곡)|엔리코 4세]](Enrico IV) 로 창작된다.
{{Authority전거 control통제}}
 
[[분류:1046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