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쇼다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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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아프리카 종단 정책]]의 수행을 위해 [[허버트 키치너]] 장군은 [[수단]]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하면서 [[철도]]를 부설하고 [[1898년]] 9월 [[하르툼]]에 도달했다. 한편, [[프랑스]]의 [[아프리카 횡단 정책]]은 [[1894년]] 점령했던 프랑스령 [[수단]]과 [[아프리카]] 동쪽 해안인 [[지부티]]를 연결하기 위해 시작됐으며, [[장바티스트 마르샹]] 대위가 [[1898년]] 7월 파쇼다에 도착해 [[프랑스]] 국기를 게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의 키치너는 급히 파쇼다로 와서 마르샹에게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마르샹 대위가 이를 거절함으로써 한동안 긴장 상태가 계속됐다. 결국 이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의 본국 정부로 넘어갔다. [[1899년]] 양국 사이에 타협이 이루어지고, 긴장됐던 양국 간 관계는 이로 인해 가까워져서 [[1904년]]에는 영불 화친 협정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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