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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최초의 전화기가 도입된 것은 [[1882년]]이다. [[청나라]] [[톈진]] 유학생 상운(尙雲)이 3월에 [[조선]]으로 귀국하면서 전화기와 전선 100m를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93년 11월 정부는 지금의 세관에 해당하는 총해관(總海關)에 "일본 동경에서 구입해 들여오는 전화기와 전료(전화기 재료) 등을 면세하라."는 공문을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96년]] [[덕수궁]]에 자석식 전화기가 설치되어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즐겨 사용하였다. 이 전화는 주요 관아는 물론 인천까지 개통되었다. 당시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백범 [[김구]]는 복수를 갚겠다면서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라는 일본인을 살해해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감옥에서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종은 인천감옥에감옥에 직접 전화를 걸어 청년 김구에 대한 사형집행을 중지시켰다. 이는 전화가 개통된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 이후에도 고종은 전화기를 자주 사용하였는데, [[명성황후]]의 유해가 안장된 [[홍릉]]에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 사별한 부인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1902년 3월 서울과 인천 사이에붓산이에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중전화]]가 개설되었다. 이후 [[대한제국]] 정부는 서울과 개성, 개성과 평양, 서울과 수원 등 전화 통화권을 확대했다. 1905년 4월 [[대한제국]]의 통신사업권을 일본에 빼앗기면서 전화 보급이 중단되었다.
 
== 기본 원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