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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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프랑스 혁명]] 때에 노트르담은 [[이성숭배]]에 봉헌된 뒤, [[최고존재숭배]]에 봉헌되었다. 이 시기 동안 대성당의 많은 보물들은 파괴되거나 강탈당했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유다 왕국|유다 왕들]]의 조각상들이 (봉건질서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왕들로 오인되어) 머리가 잘려나갔다. 잘려나간 많은 머리들이 1977년에 인근을 발굴하면서 발견되었고, 지금은 [[클뤼니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시대에 제대에 위치해 있던 성모 마리아상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교체되었다. 중요한 종들은 간신히 용해되는 것에서 피할 수 있었다. 성당의 내부는 말 먹이나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 사용되었다.
 
복원 계획은 건축가인 장바티스트앙투안 라쉬와 외젠 비올레르뒤크의 감독으로 1845년에 시작되었다. [[플레슈]](flèche, [[첨탑]]의 일종)를 건립하고 시메르 갤러리(alerie des Chimères)의 [[가고일이무깃돌|키메라]]들을 추가하는 것을 포함하여 25년간 계속되었다. 비올레르뒤크는 자신의 작품에 언제나 서명을 했는데, 고딕 볼트(궁륭)를 닮은 날개 구조를 가진 박쥐를 같이 그려 넣었다.
 
[[1871년]] [[파리 코뮌]] 시기에 노트르담 대성당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파리 코뮌]]이 [[민중]]들에 의해 [[자치]]가 실시된 [[사회주의]] 자치정부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