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리즈카 투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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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일본 경제의 고도 성장과 국제화에 따른 항공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로 일본 정부는 [[하네다 (오타 구)|하네다]]의 [[도쿄 국제공항]] 국제선을 이관할 신공항의 건설을 계획하였다. 당시 하네다 공항의 확장은 [[도쿄 항]] 항만 계획과 조정이 매우 어렵고 미국 공군 관제 구역([[요코타 비행장]])에 따라 항공기의 이착륙 경로 설정이 크게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포기하였다.
 
[[1963년]] 12월에 일본 정부는 현재의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4km 서남쪽에 있는 [[도미사토 시|도미사토]] 지역을 후보로 올렸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서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나 2년 후에 도미사토 공항 건설안은 백지화되었다. 이후 4~5개 지역을 후보로 검토하였으나 모두 반대 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신공항의 건설 계획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이를 우려한 [[사토 에이사쿠]]의 [[제1차 사토 내각 (제1차 개조)|제1차 사토 내각]]은 [[1966년]] 6월 국유지인 [[궁내청]]의 고료 목장(御料牧場)이 있었던 산리즈카-시바야마 지역을 후보지로 올렸으며, 같은 해 [[7월 4일]] 각의로 결정하였다. 이는 해당 부지가 국유지인 [[궁내청]]의 고료 목장, [[지바 현]] 소유의 임야와 일제 패망 후 [[만주국]]과 [[오키나와]]로부터 귀환한 농민들의 개척지였기 때문에 용지 매수가 수월하게 진행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공항 예정지의 40%를 차지하는 국유지인 고료 목장에 기대어 현지 주민들을 무시하고 공항 건설에 관한 사전 설명이나 대체지 마련 등의 준비 없이 속도전으로 용지 매수를 밀어붙여 농민을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정부가 각의 결정을 근거로 주민들과 일체의 교섭 시도조차 하지 않자 지역 농민들은 [[7월 20일]] '산리즈카-시바야마 연합 공항반대 동맹'을 결성하고 반대 활동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