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을 풍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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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정재진…이군선→최일영→김팔금→김칠봉→지창식→최병화(최무웅)→박원용<br />           →이남문(빗내농악)|무을 풍물 전수 계보도}}
 
그 후 [[1990년대]] 초에 상쇠였던 김신배가 병을 얻고 [[1994년]]에 사망하면서 풍물이 단절될 위기에 처하자, 김천과 선산 일대의 풍물의 근원지가 무을 임을 느끼게 된 주민들이 풍물 재건에 나서게 되었다. 최병화 상쇠의 주선으로 종쇠였던 지창식 상쇠가 귀향하여 무을 단위농협 준공식때 풍물을 울리고 제2의 도약을 준비해 [[1996년]] 제3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농악부문 최우수상인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보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무을 농악을 전수한 [[오상고등학교]], [[무을중학교]],[[장천초등학교]] 등의 학교는 경북농악경연대회 청소년부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고,특히 [[오상고등학교]]는 2001년 부평전국농악경연대회 장원,2002년 제20회 전주대사습놀이 장원, 2017년 제24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축제 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03년]] 12월, 무을풍물보존회가 만들어져 보존의 기반을 마련했고, [[2004년]] 5월에는 제30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농악부문 장원을 차지했으며, 황토현농악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 특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