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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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손견이 낙양(洛陽)으로 들어오자, [[동탁]](董卓)의 사위 [[우보 (후한)|우보]](牛輔)를 따라 섬현(陝縣)에 남았다. [[원술]](袁術)에게 배반한 [[주준]](朱儁)이 형주(荊州)에서 군대를 이끌고 낙양을 공격했기 때문에, [[곽사|곽사(郭汜)]]와 함께 기병을 이끌고 주준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이각은 진격하여 진류(陳留) · 영천(潁川)의 모든 속현의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끌고 가, 그가 지나가는 곳에서 목숨을 부지한 자가 없었다고 한다.
 
소제(少帝)의 후궁인 [[당희]](唐姬)는 소제가 [[이유 (후한)|이유(李儒)]]에게 살해당한 후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가던 중 영천으로 쳐들어온 이각에게 잡혔고, 이각이 아내가 될 것을 권하자 이를 거절하여 이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거절함
 
또한, 영천의 [[순욱 (후한)|순욱(荀彧)]]은 이각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하루속히 피난을 갈 것을 장로들에게 부탁하였다. 장로들이 응하지 않아서, 순욱은 자신의 일족들만을 데리고 기주(冀州)로 피난을 갔다. 결국 영천은 이각의 공격을 받아 주민 대부분이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