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삼국 외상 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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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2.gif|썸네일섬네일|300px|right오른쪽|[[1945년]] [[12월 26일]]자 미국 워싱턴 타임스 헤럴드(현 워싱턴포스트) 7면.“[[미국]]의 번스 국무장관이 [[소련]]의 신탁 통치안을 반대하고 한국의 즉시 독립을 주장하라는 훈령을 받고 러시아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삼국 외상 회의'''(-三國外相會議) 또는 '''모스크바 삼상 회의'''(-三相會議)는 1945년 12월 16일부터 26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cw}}[[영국]]{{.cw}}[[소련]]의 외무장관 회의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의 [[일본]] 점령지구에 대한 관리 문제를 비롯하여 [[얄타회담]]에 따른 [[대한민국]]의 독립 문제를 거론하였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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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탁통치에 대한 한국의 반응 ==
[[파일:신탁통치 오보사건.gif|썸네일섬네일|400px|right오른쪽|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과는 곧바로 한반도에 전해졌으나 좌익과 우익의 극심한 분열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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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45년 12월]]
[[분류:1945년 회의]]
[[분류:미국-영국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