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동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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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 직후부터 건국동맹은 중앙조직,지방조직을 꾸렸을 뿐만 아니라 각 계급,계층을 망라하기 위한 조직적 준비사업을 초보적인 단계에서나마 광범하게 진행시켰다. 광복 직전까지 조직은 급속히 확대되었지만, 강력한 조직역량을 갖추지 못한점이 한계였다. 건국동맹의 주요활동은 조직의 골격을 짜고 지방,부문별 조직을 확대하는 조직활동,해외혁명단체들과의 연락,연대활동, 건국준비 활동이었다.
[[1944년]] 8월에 참가한 [[여운형]],현우현,황운,이석구,김진우,[[조동호]]에 이어 [[1944년]] 10월에는 여운형의 추천으로 이기석,최병철,[[김세용]],[[박승환]],[[김문갑]],[[이상백]],허규,[[이만규]],[[이여성]],[[이수목]],[[정재철]] 등이 가맹했다. [[1944년]] 10월경에 작성된 중앙조직은, 위원장 [[여운형]], 내무부 [[조동호]],현우현(국내에서의 동지규합과 조직관리 활동), 외무부 [[이걸소]],이석구,
그러나 건국동맹 중앙은 [[여운형]] 개인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직원의 확보도 여운형의 개인적 관계에 의존하고 있었다. 참가한 인물들 역시 지사적 입장이 강한 중,장년층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건국동맹의 중앙은 마치 우국지사들의 비밀결사의 형태에 가까웠다. 또한 참가 인물들이 조직적 훈련,활동을 벌인 사람들도 아니었고, 이념적으로 단결,통일되지도 않았다. 건국동맹은 이론적으로 탁월한 [[정치]]노선,조직노선이나 세련된 활동전술을 구사하지는 못했고, 개인적 연락활동에 치중하는 수공업적 조직화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가장 열성적이었던 [[공산주의]]자들조차 [[경성콤그룹]](1939년~1941년 활동한 단체) 검거 이후 와해되어 [[일제강점기]] 말기 조직적 실체가 거의 전무하던 시대적 조건에서 건국동맹 중앙의 조직은 1940년대 국내 민족해방운동의 중요한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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