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 백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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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로마 제정]] 시기에 에노는 대부분이 [[벨가이족|벨가이족계]] [[네르비족]]들의 ''키비타스''들에 위치했었다. 그러다가 로마가 이곳을 잃으면서, 이 지역 전체는 [[살리 프랑크족]]의 [[네우스트리아]]내 영주의 지배하에 놓였다. [[샤를마뉴]] 시대부터 프랑크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이라 칭해졌다.
 
에노 백작령은 900년 쯤에 프랑크 제국의 황제 [[로타리우스 1세]]의 손자 [[레니에 1세 드 에노|로렌 공작 레니에 1세]]가 "에노 백작" 작위를 가지면서, 프랑크 제국이 통치하던 [[로타링기아 왕국]] 지역에 세워졌다. 911년 [[동프랑크 왕국]]의 마지막 [[카롤루스 왕조]]계 왕 [[루도비쿠스 4세 인판스|루도비쿠스 4세]]가 사망하고부터, 레니에는 [[카롤루스 3세 심플렉스]]가 통치하던 [[서프랑크 왕국]]에 가담했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 [[기셀베르투스 로타링기아에|기슬베르]]는 925년에 독일왕 [[하인리히 1세]]의 밑으로 들어가, 그후로 로타랑기아 공국은 독일 왕국이 된 동 프랑크 왕국의 일부로 남게되었으며 [[중세 프랑스|프랑스]]가 된 서 프랑크 왕국과 국경을 마주했다.
 
939년 기슬베르가 사망한 후, [[레니에 가문]] 출신의 그의 후계자들은 로타랑기아 공작 작위를 유지하는데 실패했지만 에노 지역 통치는 계속하였다. [[레니에 3세 드 에노|에노 백작 레니에 3세]]는 [[브룬 폰 작센|브룬]] 공작을 상대로 벌인 반란이 실패한 후, 958년에 폐위되고 파문당하였다. 이때 에노 백작령은 분할되었다. 그러나 998년에 레니에 가문은 [[몽스]] 백작령의 소유권을 되찾았다. 마지막 백작 [[에르앙 드 에노|에르망]]이 1051년에 자식을 두지 못하고 사망하고, 그의 미망인 [[리실드 드 에노|리실드]]는 플랑드르 백작 및 프랑스의 봉신 [[보두앵 4세 드 플랑드르|보두앵 4세]]와 재혼했다. 1067년 보두앵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는 에노와 몽스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로베르 1세 드 플랑드르|로베르 1세]]과 상속 분쟁중에 1071년 [[카셀 전투]]에서 전사한 [[아르눌 3세 드 플랑드르|아르눌 3세]]가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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