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노 백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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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 백작령'''({{llang|fr|Comté de Hainaut}}, {{llang|nl|Graafschap Henegouwen}}, {{llang|nlde|Grafschaft Hennegau}})은 [[몽스]] ({{llang|nl|Bergen|베르헌}})를 수도로 하는 [[신성 로마 제국]]내 옛 나라이다. 명칭은 [[엔 강]] (네덜란드어: Hene, 독일어: Henne)에서 유래했다. 몽스뿐만 아니라 [[발랑시엔]], [[샤를루아]]등의 도시들도 포함된다. 오늘날 벨기에의 [[에노 주]]와 프랑스의 [[노르 주]] 남부 지역으로 이뤄졌었다.
 
원래는 [[로타링기아 왕국]]의 [[가우]]였던 에노는 [[독일 왕국|독일]]에 최종적으로 소속되기 전에 잠시 [[서프랑크 왕국]]의 일부였다 (911–25년). 에노 백작령은 958년에 분할되었다가 약 1071년에 통합되었다. [[중세 성기]] 기간에 에노는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프랑스화가 되었다. 1432년에 에노는 [[발루아부르고뉴 가문]]이 획득하여 1477년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부르고뉴령 네덜란드의 일부로 넘어가 1512년 [[부르군트 관구]]의 일부가 되었다. 1555년부터 1714년까지 [[스페인령 네덜란드|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다. 1659년과 1678년에 [[프랑스 에노|남부 에노]]는 프랑스가 획득했고 1797년에 나머지도 에노 백작이기도 했던 [[프란츠 2세|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가 프랑스에 양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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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 백작령은 900년 쯤에 프랑크 제국의 황제 [[로타리우스 1세]]의 손자 [[레니에 1세 드 에노|로렌 공작 레니에 1세]]가 "에노 백작" 작위를 가지면서, 프랑크 제국이 통치하던 [[로타링기아 왕국]] 지역에 세워졌다. 911년 [[동프랑크 왕국]]의 마지막 [[카롤루스 왕조]]계 왕 [[루도비쿠스 4세 인판스|루도비쿠스 4세]]가 사망하고부터, 레니에는 [[카롤루스 3세 심플렉스]]가 통치하던 [[서프랑크 왕국]]에 가담했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 [[기셀베르투스 로타링기아에|기슬베르]]는 925년에 독일왕 [[하인리히 1세]]의 밑으로 들어가, 그후로 로타랑기아 공국은 독일 왕국이 된 동 프랑크 왕국의 일부로 남게되었으며 [[중세 프랑스|프랑스]]가 된 서 프랑크 왕국과 국경을 마주했다.
 
939년 기슬베르가 사망한 후, [[레니에 가문]] 출신의 그의 후계자들은 로타랑기아 공작 작위를 유지하는데 실패했지만 에노 지역 통치는 계속하였다. [[레니에 3세 드 에노|에노 백작 레니에 3세]]는 [[브룬 폰 작센|브룬]] 공작을 상대로 벌인 반란이 실패한 후, 958년에 폐위되고 파문당하였다. 이때 에노 백작령은 분할되었다. 그러나 998년에 레니에 가문은 [[몽스]] 백작령의 소유권을 되찾았다. 마지막 백작 [[에르앙 드 에노|에르망]]이 1051년에 자식을 두지 못하고 사망하고, 그의 미망인 [[리실드 드 에노|리실드]]는 플랑드르 백작 및 프랑스의 봉신 [[보두앵 4세 드 플랑드르|보두앵 4세]]와 재혼했다. 1067년 보두앵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는 에노와 몽스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로베르 1세 드 플랑드르|로베르 1세]]과 상속 분쟁중에 1071년 [[카셀 전투]]에서 전사한 [[아르눌 3세 드 플랑드르|아르눌 3세]]가 이어받았다. 전투의 승자 로베르가 플랑드르를 획득했지만, 그의 형수 리실드는 그녀의 결혼 지참금으로서 [[신성 로마 제국]]내의 인접한 [[하 로렌 공국|저지 로렌]]을 유지했다. 그렇게 부활한 에노 백작령은 세 [[제국 칙령|직할]] 백작령의 [[재봉건화]]]를 통해 생겨났다:
* 몽스 백작령
* [[브라반트 방백령]]의 남부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