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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대 믿음==
불교는 철저한 수행을 중요시하는 소승불교와 수행 보다는 믿음을 중요시하는 대승불교로 나뉘어진다. 3세기 대승불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14대 조사 [[나가르주나|용수]] 스님은 기존 불교를 소승불교라 비하하는 명칭을 붙여가며, 자신의 새로운 교단을 대승불교라고 주장했다. 기존 소승불교의 수많은 계율을 대폭 삭제하였으며, 오랜기간 수행하는 수행중심 불교를 매우 짧은 [[반야심경]]을 승속이 모두 외우게 하여 믿음중심 불교로 개혁했다. 그러나 다시 100년이 지나서 4세기에 후기대승불교를 일으킨 제21대 조사 [[바수반두|세친]] 스님이 믿음중심 불교를 수행중심 불교로 또다시 혁신했다. 세친 스님은 원래 당대 소승불교 최고 경지의 스님이었다. 대승불교로 개종했다지만, 모든 소승불교 이론을 다 가져와 대승불교에 편입시켜, 믿음중심 대승불교가 수행중심 소승불교로 매우 비슷하게 바뀌었다.
==깨달음의 정의==
보림에 대한 찬반의 견해대립은, 근본으로 돌이켜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깨달음의 정의에 대한 견해대립까지로 이어진다.
 
원래 깨달음은 석가모니가 경전에서 소개하여 시범을 보인 신통력을 거의 모두 다 할 줄 알아야만 진정한 깨달음이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후대로 이어지면서, 깨달음에 대한 정의가 자주 바뀌었고, 불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신통력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데도 깨달음을 인정하는 풍조도 있었다.
 
석가모니의 신통력에는 무한겁의 세월을 1초로 줄이는 [[수능엄삼매]]가 있는데, 수천억년의 시간을 1초로 줄여 수행할 수 있는데, 그까짓 수십년의 보림은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단 1초에 보림을 마칠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불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신통력들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데도 [[무상정등정각]]이라고 주장하는 시대에 이르면, 수십년의 보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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