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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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공의 측정 ==
===[[음극선]] 실험과 진공<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74]</ref> ===
음극선관을 처음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은 [[패러데이]] 이다. 19세기말에 높은 [[전압]]을 유리관의 각 끝에 있는 금속판에 걸게 되면 유리관 안에 [[방전]]현상이 일어나고 번쩍거리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에 엄청난 과학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었다. 양극판 사이에 흐르는 방전효과라고 과학자들은 보고 그 현상을 '음극선'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러한 음극선은 유리관안에 공기가 많이 들어있으면 방해를 받아 잘 흐르지 못했다. 그리하여 과학자들이 유리관 안의 공기를 진공펌프를 이용하여 빼내었고 그것이 음극선관의 시초이다. 진공기술이 좋지 않았던 초기의 음극선관은 성능이 좋지 않았다. 독일의 유리 기구 제작자이며 엔지니어였던 [[가이슬러]]가 비로소 진공 기술을 높인 음극선관을 만들어 음극선관을 만들었고 이를 가이슬러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가이슬러관이 발명되어서 비로소 음극선의 흐름이 제대로 관찰될 수 있었다. 이후에 영국의 [[크룩스]]가 가이슬러관의 진공도보다 더 높은 진공도를 갖는 음극선관을 개발하였는데 이를 크룩스관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이후에 이러한 음극선관을 이용하여 음극선이 과연 전하의 흐름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다. 먼저 [[헤르츠]]가 1880년대 실험을 해보았고 음극선이 [[전하]]의 흐름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 이유는 음극선에 [[전기장]]을 걸어주었을 때 음극선이 편향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결론 역시 음극선관의 진공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 [[톰슨]]은 입자의 빔이 맞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여주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톰슨과 헤르츠의 실험의 차이는 바로 진공 기술의 차이였다. 사실 음극선 유리관 안에 기체가 많을수록 전기장에 효과가 줄어들었고 공기의 방해 때문에 전하의 편향효과를 관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톰슨은 관속에 남아있는 기체를 가능한 많이 제거하고자 장치의 열을 오랜시간동안 가하고 진공펌프를 오랫동안 가동시키는등 헤르츠가 하지 않은 방법으로 더 나은 진공을 만들어내었다. 실제로 톰슨은 헤르츠의 실험이 잘못되었음을 자신실험기구에서 헤르츠의 실험을 재연했을 때 편향효과가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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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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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분류:진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