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팔루자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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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팔루자 전투'''(First Battle of Fallujah) 또는 '''단호한 결의 작전'''(Operation Vigilant Resolve)은 2004년 4월 5일에 있었던 이라크 [[팔루자]]에서의 미군 작전이다.
== 전개 ==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서쪽 50km에 위치한 팔루자에서 미국 민간인 경호회사 직원 4명의 피살과 사체훼손 사건이 발생했다. 사체가 주민들에 의해 끌려다니는 봉변을 당했으며, 2명은 참수돼 전시되기도 했다. 1주일이 지난 2004년 4월 5일, 이 사건에 대한 보복([[복구]], reprisal)으로, 미국 정부는 [[팔루자]]에 대해 '단호한 결의(Vigilant Resolve)'라는 대규모 군사작전을 수행했다.▼
2004년 4월 5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서쪽 50km에 위치한 팔루자에서 미국 민간인 경호회사 직원 4명의 피살과 사체훼손 사건이 발생했다.<ref name="한겨레1">{{뉴스 인용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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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명의 [[미국 해병대]]와 2개 이라크 치안대대 병력이 팔루자에 진입했다.<ref name="한겨레1"/> {{출처|미국 육군의 1급 특수부대인 [[델타 포스]]도 참여했다. 미국 해병대는 미군에서 3급 특수부대로 분류된다.|날짜=2017-12-09}}
단호한 결의 작전으로 팔루자에서만 600여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2004년 4월 1차 팔루자 공격으로 반미 저항이 제대로 진압되지 않자, 11월 [[2차 팔루자 전투|2차 팔루자 공격]]을 대규모로 감행했다.▼
== 비판 ==
미국은 [[AC-130]] 중무장 항공기, [[AH-64 아파치]] 공격헬기, [[F-16]] 전투기 등을 동원해 민가와 이슬람 사원 등을 무차별 폭격해 20여 일간 7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 공격에서 미군은 사원 철탑과 건물 옥상에 두세 명씩의 저격수를 배치해 길 위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미군은 [[앰뷸런스]]에까지 폭격을 가했다.<ref>이것이 미국이 원한 '자유'의 모습인가, 프레시안, 2005-11-14</ref>▼
[[이라크평화네트워크]]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옥상의 미군 저격수들이 팔루자 거리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들을 사살했다'는 주장이 있다.<ref>{{뉴스 인용 |저자=황예랑 |제목=움직이면 모조리 사살 팔루자 민간인학살 처참 |url=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7003000/2004/04/007003000200404222049171.html |뉴스=한겨레 |날짜=2004-04-22 |확인날짜=2017-12-09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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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주둔 미군은 2004년 4월 1차 팔루자 공격으로 반미 저항이 제대로 진압되지 않자, 11월 [[2차 팔루자 전투|2차 팔루자 공격]]을 대규모로 감행했다.
== 백린탄 ==
2004년 4월 팔루자 대공세 때에 [[화학무기]]인 백린탄을 썼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미군은 이라크 정부가 의혹을 제기하자 "[[조명탄]] 목적으로 아주 드물게 썼을 뿐"이라며 부인했다가, 1년여 뒤에야 마지못해 인정했다.<ref>
[[백린탄]]은 중동의 미군이 야간에 [[조명탄]]으로 많이 사용했다. {{출처|그러나 유엔이 금지한 화학무기로서, 민간인에게 사용은 금지된다.|날짜=2017-12-09}} 뼈가 타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화염을 일으키며, 잘 꺼지지 않는다.
[[팔루자]] 대공세 당시 사용한 [[백린탄]]의 후유증으로 이 지역의 유아 사망률과 암, 백혈병 발병률이 1945년 일본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 원폭 당시 생존자들보다 더 높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공개됐다.<ref>{{뉴스 인용 |제목=팔루자 폭탄 후유증, 히로시마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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