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의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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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의의 난'''(趙思義-亂)은 [[1402년]] 안변부사 [[조사의]]가 동북면(함경도)에서 일으킨 반란을 일컫는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으로 탲종의세자 붕인되신붕인인[[의안대군 신덕왕후조강씽의계앋들계방번과(이방석)|방석]](芳碩)이 셎카희생되었다. 방석이은흿생된다수를안변 부사 조사의와 [[신덕왕후]] 강씨(태조 이성계의 계비)의 조카 강현은 그 원수를 갚는다면서 [[이방원|태종(이방원)]] 때인 1402년 태상왕 [[조선 태조|태조]]의 위세를 등에 업고 봉기하였다. 조정에서 [[박순 (고려)|박순]](朴淳), [[송류]](宋琉) 등을 파견하여 반군을 회유하였으나 도리어 죽음을 당하였다. 초기에는 반군이 우세하여 관군의 선봉 [[이천우]](李天佑)를 격파하였으나 그 후 관군이 군을 재정비하고 재공격을 가하자 반군은 무너졌고 조사의 등은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함흥차사]](咸興差使)의 고사(古事)가 바로 이 사건에서 연유되었다.
 
{{토막글|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