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기미야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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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는 트레이드 당시 구도와 함께 요코하마로 이적한 [[니시 도시히사]]와 함께 요미우리와의 ‘인연의 대결’로 기대를 모았으나 1월 11일에 방송된 [[보도 스테이션]]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프런트였다면 43세의 선수를 보호 범위에는 넣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여 자신이 소속된 구단의 팀 사정에 이해한다는 모습을 보였으며, “날 원한다고 해준 구단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요코하마 구단에는 “밝은 이미지를 가진 구단이다. 단순히 공을 던지는 것 이상의 팀을 공헌하고 싶다”라는 각오를 밝혔고 “훈련지에서 [[마크 크룬|크룬]]을 만났다”며 팀 동료들에 대한 메시지를 보냈다. 2007년 1월 19일에 가진 입단 기자회견에서 “하마({{lang|ja|ハマ}})의 뭐라고 불리고 싶으냐”라는 [[도쿄 방송 홀딩스|TBS]] 아나운서인 아오키 유코의 질문에 대해 “그러면 하마의 아저씨가 좋겠다”라며 장난기 가득한 어조로 대답했다. 연봉은 전년도 2억 9,000만 엔에서 2억 엔이 삭감된 9,000만 엔(여기에 최고 5,000만 엔의 성과급)으로 프로 야구 사상 최대 감봉액(당시)이 됐다(금액은 추정치).
 
2007년 4월 1일, 요미우리와의 경기에 등판하여 1군에서의 실제로 뛴 통산 경력이 26년에 달하면서 [[노무라 가쓰야]]가 세운 프로 야구 최장 기록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시즌 개막 초에는 불안정한 투구가 눈에 띄면서 3연패를 당하는 등 스스로 2군행을 지원하여 조정에 들어갔고 5월 11일 히로시마전에서 9회에 구원 등판하여 1군에 복귀했다. 구원으로 등판한 것은 9년 만의 일이다. 5월 23일 세이부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됐는데 [[요네다 데쓰야]]가 수립한 22년 연속 승리 기록을 경신하고 23년 연속 승리를 달성했다. 또, 44세 넘은 선수가 승리 투수가 된 것은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2007년 7월 12일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6회말에 [[나카타 겐이치]]로부터 중전 안타를 날려 44세 2개월의 나이로 센트럴 리그 최고령 안타 기록을 수립했다. 더 나아가 9월 26일 한신과의 경기에서 5회말에 [[하시모토 겐타로]]로부터 좌전 안타를 날리는 활약을 보이며 44세 4개월에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ref>프로 야구 기록은 1950년 9월 28일, [[오릭스 버펄로스|한큐 브레이브스]]의 [[하마자키 신지]]가 [[다이에이 유니온스]]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48세 9개월이다.</ref> 7월 24일 요미우리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되면서 사상 최초로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긴테쓰]]를 비롯한 전체 13개 구단으로부터 승리를 거둔 투수가 됐다. 개막 당초에는 실투를 하는 등의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는 수모를 겪었지만 1군에 복귀한 이후에는 안정된 투구를 계속 보여줬다. 시즌 종료 후에 있은 재계약 협상에서 2,000만 엔이 상승한 연봉 1억 1,000만 엔으로 재계약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