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FSA123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3번째 줄:
 
== 생애 ==
기원전 80년에 [[프톨레마이오스 11세|프톨레마이오스 11세 알렉산드로스 2세]]가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의 분노로 살해되자, 정당한 자손은 아니기는 했지만 파라오로 즉위하게 된다. 그리고 여동생인 [[클레오파트라 5세]](또는 [[클레오파트라 5세|6세]])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점점 거세지는 [[로마]]의 압력이나 내정의 혼란을 신경쓰지 않고, 태평하게 지냈기 때문에 '피리부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울레테스라고 불리며 야유받았다. 물론, 아울레테스가 정통인 후계자가 아니며 권력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로마의 세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은 고려해봐야 한다. 그런데도 로마에 뇌물을 주거나 많은 공납을 바치는 행위 등이등은 이집트 사람들의 세금부담을 가증시켰다.
 
또한 남동생이 통치하던 [[키프로스]]의 섬을 로마에 빼앗기는 것을 방치했는데 결국 시민들의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여 반란이 일어났다. 위기를 느낀 아울레테스는 기원전 58년에 파라오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로마로 망명했다. 반란이 진정되자 그의 딸인 베레니케 4세가 새로운 파라오로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