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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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어권에서 "국민"(natio)이라는 표현이 기록에 처음으로 나온 경우는 [[968년]] 크레모나의 주교 [[리우트프란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1세]]를 대변하여 [[비잔티움 제국]] 황제 [[니케포로스 2세]]에 맞서면서 그의 보고서 "영토"에 다음과 같이 쓴 것에서 출발한다.
 
{{인용문|나는 답하였다: "당신은 이 땅이 제국의 소유라고 주장하시는군요. 여기 사람들의 국민성/국적(natio)과 언어가 증명하듯이 (이 땅은)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오."<ref>[http://medieval.ucdavis.edu/20A/Luitprand.html LIUTPRAND OF CREMONA: <nowiki><P></nowiki> REPORT OF HIS MISSION TO CONSTANTINOPLE (968)<!-- 봇이 따온 제목 -->]</ref>}}
 
이 표현은 {{llang|la|natio}}에서 파생되었으며 원래는 하나의 대학에 (특히 [[파리 대학]]) 소속되어 있는 학생들을 일컬었다. 이들 파리 대학생들은 모두 "{{llang|fr|''pays''}}"(나라)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자신들의 가족 법에 구속받는다고 생각되었다. [[1383년]]과 [[1384년]] Jean Gerson은 두 번 프랑스 ''국민''(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어를 하는 대학생)을 위한 procurator로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