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Choboty (토론 | 기여)
잔글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 예쁘게 바꿈
29번째 줄:
 
== 생애 ==
[[파일:Shah Ismail.JPG|thumb섬네일|샤 이스마일 1세]]
[[1488년]] [[7월 9일]], 이스마일의 아버지 하이다르가 백양조의 군대에 패배하고, 그 자신은 전사했다. 그 이후 이스마일의 형들도 연이은 전쟁에서 전사하여 이스마일 1세가 사파비 종단의 지도자가 되었다. [[1499년]], 12세의 이스마일은 길란의 숲 속에서 나타나 이란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참가하기 시작했다.<ref name="이란백과_이스마일1세"/> 그로부터 2년 뒤인 [[1501년]], 이스마일은 타브리즈를 점령하여 사파비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이후 이스마일은 약 10년만에 이란 고원 북부를 점령하여, 그의 키질바시 세력민들은 그를 거의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 [[1510년]]에는 [[메르브]]에 주둔하고 있던 [[아불 하이르 왕조]]의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을 급습하여 포로로 잡은 뒤에 목을 벰으로서 오랜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메르브 전투]])<ref>스티븐 데일, “유럽 팽창 시대의 이슬람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이슬람사》, 프랜시스 로빈슨 편집, 손주영, 송경근, 황병하 옮김(서울: 시공사, 2002), p.112-13.</ref> 이를 통해 그는 영토를 [[아무 강]]변 까지 넓힐 수 있었다.<ref>유흥태, 《이란의 역사》(서울: 살림, 2008), p.45.</ref>
 
95번째 줄:
[[분류:15세기 이란 사람]]
[[분류:16세기 이란 사람]]
[[분류: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