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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제1바이올린 파트의 수석 연주자이듯 제1바이올린 선우향희도 모란봉악단의 악장으로서 곡을 진행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악단의 단원들이 김정은과 청중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도 무대 전면에 위치하였던 가수 6명은 뒷걸음질로 현악 4중주단에게 전면을 양보하고 현악 4중주단이 무대 제일 앞에서 인사를 하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후 선우향희가 악단을 떠나면서 현악 4중주단은 악단의 중심이 아니라 악단의 한 요소로 전락하는 듯 보였으며 이후 어느 공연에서는 무대 전면이 아닌 무대 측면의 뒷줄에 자리 잡는 '굴욕'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모란봉악단은 단장 [[현송월]]이 2014년 5월 노동신문 기고에서 밝힌 것처럼 초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단들이 내놓은 명곡 작품들도 형상해보고 창작가들은 경음악에 대한 세계적인 발전 추세도 연구하였으며 또 명성 높은 악단들의 운영과 활동방식에 대하여 파악하느라 애썼다고 한다. 즉, 모란봉악단은 [[보천보전자악단]]을 계승하는 경음악단이 그 시작점이었다.<ref name="yp2013" /> 그러나 폭발적인 인기와 그 파급력은 모란봉악단을 단순한 여성밴드로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의 기본사명이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 있는 무기가 되는 것'"이라고 정리해주었으며 이후 악단은 초기에 보여주었던 모란봉악단만의 단독 공연이 아닌,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이 주를 이루게 된다. [[선군정치]]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주체혁명의 새 시대를 선도해나가는 사상전선의 기수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2015년 1월 이후 지금까지 모란봉악단은 연회 공연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연에서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과 합동으로 무대에 오르게 된다.
 
== 악단의 평가와 위상 ==
2013년 8월 어린이의약품 지원 건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던 SBS 오기현 PD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은 악단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선우향희'를 최고의 스타로 여긴다고 한다. 이른바 북한의 아이돌인 것이다. 예전에는 '휘파람'을 부른 [[전혜영 (가수)|전혜영]]이나 '반갑습니다'의 이경숙 등 가수들이 최고 인기였는데, 오 PD는 가수도 아닌 연주자가 스타로 떠오른 것이 이례적이라고 부연하였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601033.html 북한의 걸그룹 '모란봉악단' 뜨면 삼촌팬 들썩] - 한겨레</ref>
 
2014년 3월 일반에게 공개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관심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노동신문]]은 공연 첫날 5천석 규모의 [[4.25문화회관]]이 초만원을 이뤘다고 보도한 데 이어,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열풍으로 수도 평양이 흥성인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가예술공연국으로는 매일같이 공연 관람과 관련한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ref>[http://www.huffingtonpost.kr/2014/03/25/story_n_5025637.html 북한에도 '소녀시대'가 있다] - 허핑턴포스트</ref> 또한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맞아 노동신문은 "전국을 들었다 놓고있는 모란봉악단의 음악포성, 노래포성은 문학예술의 감화력과 견인력이 얼마나 큰 가 하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다"며 "당은 문학예술 부문의 일꾼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이 모란봉악단의 창조정신, 투쟁기풍을 적극 따라배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ref>[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306 北,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개막...'모란봉악단 정신·기풍 배우자'] - 통일뉴스</ref> 모란봉악단은 문예부문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모범이 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모리 토모오미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은 2015년 10월 13일 숭실대에서 열린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모란봉악단, 그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을 중심으로 예술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음악 정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모란봉악단은 그 형식과 내용 모두가 김정은의 사고의 연장선에 있다"며 "악단이 창설 후 곧바로 북한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예술영역은 물론 사회 분위기나 유행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메시지로서 악단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ref>[http://news1.kr/articles/?2456205 北 모란봉악단은 존재 자체가 김정은 메시지] - News 1</ref>--->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15년 11월 26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김정은 정권 4년 평가와 남북관계 전망' 학술회의에서 서구의 전자음악 특히 록이나 팝 음악에 대하여 자본주의 문화로 비판하였던 북한이 80년대 이후에는 보천보전자악단이나 왕재산경음악단을 만들어서 새로운 문화흐름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던 것처럼 사회문화적 상황이 변화하는 경우 문화정책도 일정 부분 새로운 조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하여 왔는데 이러한 정책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모란봉악단이라고 설명하였다. 외부문화의 유입확대, 주민들 특히 젊은 세대의 문화취향 변화는 북한판 걸그룹이라는 문화정책적 대응을 가져왔다는 것이다.<ref name="inss_2015">{{서적 인용|author1=|author2=|title=김정은 정권 4년 평가와 남북관계 전망 학술지|date=2015-11|publisher=국가안보전략연구원|pages=55-56}}</ref> 김정은이 새 세기의 요구에 맞는 모란봉악단을 친히 조직해 주었다는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는 바로 이러한 대응을 설명해주고 있다. 한편 노동신문은 2017년 11월 3일 자에서 새것에 민감하고 진취적인 청년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하며 제국주의자들이 감행하는 사상문화적 침투책동에서 첫째가는 대상은 청년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청년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홀시하면 청년들이 쉽게 날라리 바람에 말려들 수 있으며 사회의 우환거리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 원산농업대학 입구의 느티나무 옆에는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께서 보아주신 느티나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ref>[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4500&num=91564 김정은 우상화 가속…현지방문 표식비 세워] - 데일리NK</ref> 또한 2016년 9월의 원산 에어쇼에서 공개된 북한공군 여자 조종사들의 미그21 전투기에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께서 보아주신 비행기'"라는 붉은 명판이 붙어 있었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는 이렇듯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데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직접 관람한 횟수만도 수십 차례 이상이었다. 단장 [[현송월]]의 2014년 5월 노동신문 기고에 의한다면 김정은은 모란봉악단 사업을 지도하기 위하여 깊은 밤, 이른 새벽과 명절날, 일요일에 나온 적이 더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정이 깊은 밤에 나온 김정은을 새벽녘에 바래다준 적이 있었다고도 한다. 최고 영도자가 이렇게 세심한 지도와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은 악단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노동신문은 2014년 5월 19일 사설에서 모란봉악단이 "우리 당의 친솔악단, 국보적인 예술단체"라고 주장하였으며, 2015년 5월 14일 1면의 '"모란봉악단의 진군나팔소리'"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모란봉악단의 음악에 바로 당의 목소리, 시대와 혁명의 요구가 담겨져있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이 어떤 정신과 투쟁기풍, 창조방식으로 최후승리를 위한 총공격전을 다그쳐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투쟁과 생활의 교과서와도 같다"라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그동안 악단을 문화예술분야의 모범대상으로 부각시켜왔던 것에서 한층 더 나아가 '혁명 과업'의 최전선에서 군대와 인민을 이끄는 존재로 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또한, 신문은 같은 제목의 기사에서 모란봉악단의 노래들은 몇천만 톤의 식량에도 비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강동완 동아대교수는동아대 교수는 그의 저서 《모란봉악단, 김정은을 말하다》에서 음악은 때로 수천, 수만의 총포를 대신했고 수백, 수천만 톤의 식량을 대신했다는 김정일의 음악정치를 계승하여,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김정은식 음악정치가 모란봉악단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ref name="kdw_mbb">{{서적 인용|author1=강동완|author2=|title=모란봉악단 김정은을 말하다|date=2014|publisher=도서출판 선인|isbn=978-89-5933-744-6}}</ref>
 
== 악단의 음악적 스펙트럼 ==
|align="center"|홍수경(전기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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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경은 신디사이저 연주자 리희경과 함께 모란봉악단의 첫 시범공연부터 지금까지2017년 12월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멤버이기도 하다. 제2바이올린 주자이며, 선우향희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2014년 3월 17일의 공연에서는 제1바이올린을 담당하였다. 모란봉악단 이전에는 2011년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과 2011-2012년 [[삼지연악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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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차영미(전기바이올린)
|align="center"|리희경(신디사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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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희경은 전기바이올린 홍수경과 함께 창단 이후 지금까지2017년 12월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공연무대에 빠지지 않은 멤버이다. 모란봉악단 이전에는 왕재산예술단에서 신디사이저 담당으로 활동하였다. 역시 2015년 10월 25일 '륙군대위'의 군사칭호가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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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김영미(피아노, 신디사이저)
|align="center"|최정임(색소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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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담당이며 때로는 클라리넷 그리고 가끔 간단한 타악기를 담당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첫 공연부터 지금까지2017년 12월 현재까지 줄곧 무대에 오르고 있는 몇 안 되는 연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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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리윤희(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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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목록 ==
다음은 모란봉악단의 날짜별 공연 목록이다. 공연 별로 더 자세한 정보는 Pekka Korhonen's Moranbong Band DiscographyDiscography에서<ref>[https://morandisco.wordpress.com/ Moranbong Band] - Pekka Korhonen's Moranbong Band Discography at Wordpress</ref>에서 발견할 수 있다있으며 공연 실황이 TV로 녹화 방송되지 않은 것은 다시 말해 공개되지 않은 공연은 공연 장소 옆에 ** 표시를 하였다.
 
=== 2012년 ===
* 7월 28일 ~ 30일 ([[류경정주영체육관|류경 정주영체육관]]) : 7.27 전승절 경축공연. 1, 2부로 나누어서 공연. 1부는 올리브색 군복, 2부는 비교적 짧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공연. 2부 공연에서 Csárdás, Minuetto, Ma Reine de Saba, Mozart No 40, Zigeunerweisen 외국음악 연주. 외국 음악이 메들리가 아닌 개별 곡으로 연주된 것은 이 공연이 그 마지막이었음(유일한 예외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2015년 9월 쿠바 외교사절 환영공연).
* 8월 25일 (동부전선 군부대 강당) : 8.25경축 화선공연. 공연의상은 올리브색 군복. 녀성해안포병의 노래에서 다수의 여성 군인들 등장.
* 8월 하순 (장소미상)** : 청년절 경축공연. 정확한 내용 미상, 12월 31일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로 청년절 경축공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됨.
* 10월 10일 ~ 14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로동당창건 67돐 경축공연. 흰색 인민군 정복 그리고 비교적 짧은 스커트를 입음. 이후 이 차림새는 모란봉악단의 표준 공연의상으로 자리 잡음.
* 10월 29일 ([[류경정주영체육관|류경 정주영체육관]]) :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창립60돐 기념공연.
* 8월 2일 ([[류경정주영체육관|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경축 열병식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 노래 '샘물터에서' 간주 부분에서 현악 4중주단은 악기를 놓고 무대 전면으로 이동하여 가수들과 함께 춤을 추었음. 현악 4중주단이 안무를 한 것은 이번이 유일함.
* 10월 10일 ~ 15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로동당창건 68돐 경축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 10월 24일 ([[류경정주영체육관|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인민군 제4차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 2014년 ===
* 3월 중순 추정, 공연사실을 3월 17일 북측매체가 보도함 (동부전선 군부대 강당) : 조선중앙통신은 공연장소와 날짜를 밝히지 않았으나 공개된 사진으로 보아 2012년 8월 25일 당시의 동부전선 군부대 공연 장소와 동일함. 선우향희가 처음으로 무대에서 사라진 공연이었고 현악 파트는 여전히 멜로디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였으나 3인조로 축소되어 전면이 아닌, 무대의 오른쪽 뒤편에 배치되었으며 홍수경이 제1바이올린을 담당하였다. 현악 3인조 앞에는 신디사이저 2대가 위치하였으며 기타리스트 강평희가 악장 역할을 하였다. 선우향희 뿐만 아니라 보컬의 핵심 류진아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미확인 보도에 의한다면 [[장성택]] 숙청과 관련하여 이와 연관된 조사 때문에 공연에서 빠졌다는 관측이 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7/2014032701658.html 北 "류진아 등 모란봉 악단 단원 장성택 연루"] - 조선닷컴 뉴스</ref> 공연의 많은 부분은 김정은 찬양과 관련된 노래들로 채워졌다. <br />모란봉악단 부단장 김운룡은 [[장성택]] 사태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를, 다음과 같은 내용을 2014년 5월 노동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혁명의 최고수뇌부를 감히 어째보려고 양봉음위, 동상이몽한 현대판 종파분자들이 문학예술부문의 신념이 떨떨하고 혁명화를 부담스러워하던 자들에게 더러운 마수를 뻗친 사실은 우리를 더욱 각성시키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우향희와 류진아는 이른바 '"신념이 떨떨하고 혁명화를 부담스러워하던 자들'"이었을까?
[[파일:Palais des congrès Pyongyang.jpg|thumb|right|2014년 3차례나 모란봉악단 공연이 있었던 평양시의 4.25문화회관]]
* 3월 22일 ([[4.25문화회관]])** : 노동신문은 3월 23일 자에서 3월 22일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 그리고 여동생 김여정과 함께 4.25문화회관에서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하였다고 보도함.<ref>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3231109541 북 김정은, 부인 리설주·여동생과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 경향신문</ref>
* 3월 23일 ~ 4월 1일 ([[4.25문화회관]])** : 노동신문은 4월 2일 자에서 3/23 ~ 4/1까지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되었다고 보도함. 일반에게 공개된 10일간의 공연이었으며 선우향희와 류진아는 여전히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일부 공연은 드레스, 일부 공연은 흰색 군복을 단원들은 입었으며, 공연은 김정은과 당을 찬양하는 노래들로 채워졌다.
* 4월 2일 (장소 미상)** : 노동신문은 역시 4월 2일 자에서 김정은이 인민군장병들과 함께 량강도에 대한 순회공연을 앞둔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관람하였다고 보도함. 공연 관람한 날짜와 장소는 미상이나 사진으로 보아 장소는 4.25문화회관으로 추정되고 대홍단 등 량강도와 관련된 노래 다수가 공연에 포함됨.
* 4월 4일 ~ 4월 11일 (삼지연군, 대홍단군, 혜산시 예술극장) : 량강도 순회공연. 선우향희와 류진아가 복귀하였다. 공연의상은 항일유격대 여성대원 군복차림. 현악 4중주단은 흰 망토도 착용.
* 4월 16일 ([[4.25문화회관]]) :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 공연의상은 공군 항공점퍼, 바지, 부츠 그리고 베레모. 무대에는 실제 미그-19 전투기가 왼편에 배치됨. 최초로 현악 4중주단이 노래를 부름. 노래하는 도중 현악 4중주단 선우향희 홍수경 차영미 유은정 모두 눈물이 글썽이는 보기에 따라서 놀라운 정경이 펼쳐짐. 그 노래 가사는 [[김일성]]에 대한 것이었음.
* 5월 2일 (송도원 국제친선소년회관)** :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 준공 축하공연. 선우향희는 다시 무대에서 보이지 않음.
* 5월 19일 ~ 21일 ([[4.25문화회관]]) :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 선우향희는 무대에 오르지 못함. 차영미가 제1바이올린을 맡음. 17분에 이르는 세계명곡묶음 연주. 외국음악은 이 무대를 마지막으로 더는 연주되지 않음(예외는 2015년 9월 쿠바 외교사절 환영공연이나 해당 공연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음).
* 9월 3일 ~ 4일 ([[만수대예술극장]]) : 신작음악회. 공연의상은 흰색 군복 그리고 스커트가 아닌 바지. 선우향희의 마지막 무대이고 차영미는 공연에 참여하지 않음. 현악 3인조와 기타, 베이스 연주자는 주로 의자에 앉아서 연주함.
* 4월 27일 ~ 28일 ([[인민문화궁전]]) :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군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공연. 김은하는 제2전기바이올린 주자로 새로 모습을 보임. 그리하여 현악 4중주단은 차영미(제1전기바이올린), 김은하(제2전기바이올린), 홍수경(제3전기바이올린), 유은정(전기첼로)으로 구성. 가수 7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자와 함께 무대 전면에 위치.
[[파일:PYONGYANG CITY DPRK NORTH KOREA OCT 2012 (8648677370).jpg|thumb|right|2015년 9월 쿠바공화국 국가대표단 환영공연이 있었던 평양시 만수대지구의 인민극장]]
* 9월 7일 ([[인민극장]])** : 쿠바공화국 국가대표단을 환영하는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축하공연합동축하공연. 선우향희가 공연잠시 전체는공연에 외부에참여하였고 공개되지 않음. 선우향희가 잠시 모습을 보임.공연은 오리지널 현악 4중주단(선우향희, 홍수경, 차영미, 유은정)이 연주한 마지막 무대무대가 되었다.
* 10월 11일 ~ 18일([[류경정주영체육관|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로동당창건 70돐경축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차영미는 무대에 오르지 않음. 현악 3중주(홍수경, 김은하, 유은정).
* 12월 12일 ~ 14일 (중국 북경) : 중국 북경에서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북경 극장에서의 리허설 후에 공연은 취소되고 모란봉악단은 철수하였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리허설을 하며 공연 내용에 대해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북중 간의 마찰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였다.<ref>[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1407&num=107494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에서 드러난 김정은의 ‘조급성’] - 데일리NK</ref>
 
=== 2016년 ===
* 12월 28일 ([[류경정주영체육관|류경 정주영체육관]]) : 제1차 전당초급당위원장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공연의상은 흰색 인민군 정복, 검정 스커트 그리고 검정 부츠. 현악 파트는 차영미-홍수경-알려지지 않은 여성 첼로 연주자로 구성되었으며, 전면의 현악 3인조 바로 뒤에는 모란봉악단과 같은 흰색 정복을 입은 남성 연주자들 3명이 처음으로 모습을 보임(일렉트릭 바이올린, 일렉트릭 첼로, 색소폰).
=== 2017년 ===
* 5월 19일 ([[목란관]] 연회장)** :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 화성-12형 개발자들을 위한 축하공연. 선우향희는 거의 3년 만에 복귀. 이 공연은 TV로 공개되지 않음.
* 7월 9일 ~ 12일 ([[류경정주영체육관|류경 정주영체육관]]) :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시험발사성공 축하공연(모란봉악단, [[청봉악단]],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 합동공연).
* 7월 10일 ([[목란관]] 연회장)** :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시험발사성공을 축하하는 연회 중에 진행된 공연. 이 공연은 TV로 공개되지 않음.
* 7월 30일 ([[인민극장]]) :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성공 축하공연([[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 9월 13일 ~ 21일 (원산시 [[송도원청년야외극장]])** : 모란봉악단,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보도사진으로 미루어보아 바이올린 차영미는 무대에 오르지 않았으며 현악 파트는 선우향희-홍수경-알려지지 않은 첼로 연주자로 구성되었다. 신디사이저는 종래의 2대가 아닌 1대가 놓여져 리희경 혼자 연주하였다연주하였으며 무대에 오른 가수들은 김유경, 류진아, 박미경, 정수향, 조국향 그리고 김옥주이며 전체 라인업은 사리원 공연까지 계속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파일:HamhungOpera.jpg|thumb|right|2017년 9월 모란봉악단 공연이 있었던 함흥시 함흥대극장]]
[[파일:Театр в Саривоне - panoramio.jpg|thumb|2017년 11월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있었던 황해북도 사리원시의 황해북도예술극장]]
* 9월 24일 ~ 30일 (함흥시 [[함흥대극장]])** : 모란봉악단,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무대에 오른 가수들은 원산시 공연과 동일하게 김유경, 류진아, 박미경, 정수향, 조국향 그리고 김옥주.
* 10월 4일 ~ 14일<ref>[https://kcnawatch.co/newstream/1508063470-345011267/%EA%B3%B5%ED%9B%88%EA%B5%AD%EA%B0%80%ED%95%A9%EC%B0%BD%EB%8B%A8%EB%AA%A8%EB%9E%80%EB%B4%89%EC%95%85%EB%8B%A8%EC%99%95%EC%9E%AC%EC%82%B0%EC%98%88%EC%88%A0%EB%8B%A8%EC%9D%98-%EC%9D%8C%EC%95%85/ 공훈국가합창단, 모란봉악단, 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평안북도인민들의 대절찬속에 진행] - 2017년 10월 15일 조선중앙통신 보도 미러링</ref> (신의주시 [[평안북도예술극장]])** : 모란봉악단,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10월 10일 조선중앙TV는 모란봉악단 단원들의 신의주 공연 대기실 인터뷰를 최초로 방송하였다. 정수향, 김유경, 류진아, 선우향희 그리고 전혜련의 짧은 인터뷰이며, 하루 3회 공연이라는 힘든 일정에도 단원들은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에 피곤을 모두 잊는다고 말함.<ref>[https://www.youtube.com/watch?v=XL7v4GYVwJM 모란봉악단 10월 10일 신의주 공연 대기실 인터뷰] - YouTube</ref> 또한 10월 14일 두 번째 공개된 대기실 인터뷰에서 가수 조국향의 나이는 19세인 것으로 밝혀졌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t9UJynWnAJc 모란봉악단 10월 14일 신의주 공연 대기실 인터뷰] - YouTube</ref>
* 10월 18일 ~ 29일<ref>[https://kcnawatch.co/newstream/1509289347-94464130/%EA%B3%B5%ED%9B%88%EA%B5%AD%EA%B0%80%ED%95%A9%EC%B0%BD%EB%8B%A8%EB%AA%A8%EB%9E%80%EB%B4%89%EC%95%85%EB%8B%A8%EC%99%95%EC%9E%AC%EC%82%B0%EC%98%88%EC%88%A0%EB%8B%A8%EC%9D%98-%EC%9D%8C%EC%95%85/ 공훈국가합창단,모란봉악단,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강계시에서 진행] - 2017년 10월 2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 미러링</ref> (자강도 강계시 트랙터종합공장체육관)** : 모란봉악단,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강계 공연에서는 이전 순회공연에 참여하였던 김유경, 류진아, 박미경, 정수향, 조국향, 김옥주 여섯 가수에 가수 리옥화가 새로 참여하였다.
* 11월 2일 ~ 12일<ref>[https://kcnawatch.co/newstream/1510498843-163452023/%EA%B3%B5%ED%9B%88%EA%B5%AD%EA%B0%80%ED%95%A9%EC%B0%BD%EB%8B%A8%EB%AA%A8%EB%9E%80%EB%B4%89%EC%95%85%EB%8B%A8%EC%99%95%EC%9E%AC%EC%82%B0%EC%98%88%EC%88%A0%EB%8B%A8-%EC%9D%8C%EC%95%85%EB%AC%B4/ 공훈국가합창단,모란봉악단,왕재산예술단 음악무용종합공연 안주시에서 성황리에 진행] - 2017년 11월 12일 조선중앙통신 보도 미러링</ref> (평남 안주시 [[안주극장]])** : 모란봉악단,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노동신문은 11월 3일 자에서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순회공연은 횟수로 100여 차례에 달한다고 보도하였다.
* 11월 16일 ~ 26일 ([[남포특별시]] [[남포시예술극장|예술극장]])** : 모란봉악단,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 11월 30일 ~ 12월 6일 ([[황해북도]] [[사리원시]] [[황해북도예술극장]])** : 모란봉악단,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노동신문은 12월 19일 자에서 원산에서 첫 막이 오른 지방 순회공연이 석 달 동안 195회나 되었다고 보도하였는데 이것은 지방 도시에서 공연이 일단 시작되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3회 공연(원산 공연은 3,000석 규모의 극장이어서 하루 2회 공연한 것으로 추정)이라는 놀라운 일정으로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노동신문은 모란봉악단을 비롯한 예술인들이 "자신들을 깡그리 불태우며 창작과 공연의 순간순간을 엮어나갔으며" 또한 "전투적인 공연활동과 완강한 창조투쟁으로 오늘의 만리마시대 인간들이 어떻게 살며 투쟁해야 하는가를 산 모범으로 보여주었다"고 강변하였다. 맡은 '혁명과업수행'에 어떻게 충실해야 하며 당의 뜻을 현실로 꽃 피우기 위하여 어떻게 분발하고 또 분발해야 하는가를 실천 행동으로 예술인들이 보여주었다는 것이다.<ref>[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150 공훈국가합창단 등 순회공연, '만리마시대의 예술폭풍'] - 통일뉴스</ref>
* 11월 30일 ~ 12월 6일 ([[황해북도]] [[사리원시]] [[황해북도예술극장]]) : 모란봉악단,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 12월 13일 ([[류경정주영체육관|류경 정주영체육관]])** : 제8차 군수공업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축하공연.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5형 시험발사의 대성공을 안아온 성원들을 비롯한 제8차 군수공업대회 참가자들과 국방과학연구부문, 군수공업부문, 연관단위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일꾼들이 공연을 관람. 무대에 오른 단원들은 지방 순회공연에 참여한 라인업과 동일.
 
== 악단의 여러 모습들 ==
=== 차영미의 기고문에서 ===
2012년 첫 공연을 한 이후 단원들의 이름과 공연 동영상을 제외한다면 모란봉악단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가지면서 단원들과 악단 지도부의 노동신문 기고문은 모란봉악단에 대하여 훨씬 더 상세한 내용들을 외부세계에 알려지게 하였다. 그들의 기고문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나뭇잎을 타고 강을 건너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든다'"는 식의 이른바 지도자에 대한 신격화 그리고 일방적인 찬양이지만 그러한 내용들은 빼고 그들의 악단생활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을 여기에 소개하는데 [[문화어]] 그대로 인용하였다.
<blockquote>
{{인용문2|몇년전까지만 해도 나어린 음악소녀에 불과했던 제가 오늘과 같이 예술인대회의 높은 연단에 서게 되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겨우 20대 초엽,드넓은 음악전선의 나어린 신입병사와도 같은 저를 일류급악단의 바이올린연주가로 키워주신 따사로운 사랑에 대하여 되새겨볼 때마다 솟구쳐오르는 감사의 정으로 목메이군 합니다. 동지들은 아마 기백있고 열정적인 연주,째인 안삼블,률동적인 대형변화 등으로 사람들을 황홀한 음악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저희들의 공연을 보면서 모란봉악단 배우들은 악단에 오기전부터 저런 독특한 기량을 소유하고있은것으로 생각할수도 있을것입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군 고위장성에서 이러한 급작스러운 계급의 진급과 강등에 대하여 설명하였는데 [[김정은]]은 군부 주요 인사들의 계급장 별을 뗐다가 붙이기를 반복하면서 롤러코스터식의 길들이기를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ref>[http://www.koreatimes.co.kr/www/opinion/2017/10/304_175674.html Starts rise and fall in N. Korea] - The Korea Times</ref> 그 예로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부 부참모장 겸 화력지휘국장은 처음에 소장(별1개)으로 등장하여 상장(별3개)까지 진급하였으나 이후 중장(별2개), 다시 상장(별3개), 소장(별1개) 등으로 진급과 강등을 반복하다 한때 영관급인 대좌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으며 다시 상장까지 올라가기도 하였다. 가수 김유경은 이와 비슷하게 2012년 7월 28일 처음 대위(작은별4개)로 등장하여 2013년 2월 1일 소위(작은별1개)로 강등되었다가 2015년 10월 다시 대위로 뛰어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5년 10월 25일 [[노동신문]]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2015년 10월 24일 평양)이라는 제목으로 '"공훈국가합창단과 모란봉악단의 지휘성원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의 군사칭호를 올려줄데 대하여'"라는 기사를 실었다. 군사칭호는 계급의 북한식 표현인데 기사에 의한다면 공훈국가합창단의 지휘자 [[장룡식]]은 륙군중장으로 진급하였으며, 또한 군사칭호가 올라간 다시 말해 계급이 진급한 공훈국가합창단·모란봉악단의 단원들은 륙군소좌 리설란, 륙군대위 김향순·리희경·김유경, 륙군중위 전혜련·유은정·최정임·홍수경·조경희·김정미·한순정·김은하·류진아·박미경·리수경·박선향·김효심·조국향·오수연 등이 있었다.
 
그러나 불과 일 년 전의 최고사령관 진급 명령을 무색하게 2016년 12월 28일 공연에서는 중견가수인 륙군중좌 리옥화를 제외하고 단원들 모두는 다시 소위 계급으로 무대에 나타났다. 늘 변함없는 계급을 보여주고 있었던 유일한 단원은 선우향희였다. 악장이었던 선우향희는 당 선전선동 부서의 선택으로부터 차츰 멀어지는 중에도, 처음부터 그리고 3년의 공백기를 갖기 바로 전 2014년 9월의 무대까지 작은별 4개 대위 계급을 줄곧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2017년 7월 9일의 공연에서 선우향희를 포함한 단원 모두는 작은별 하나 소위 계급으로 통일되어 무대에 오르게 된다.
김유경에 대한 카메라 따돌림은 2년 만인 2015년 10월 11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경축공연에서 비로소 사라지게 된다. 이 공연에서 김유경은 풀 화면으로 혼자 카메라에 잡히기도 하였으며 조국향과 듀오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김유경은 2015년 10월 24일 공식적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의하여 대위로 다시 계급이 복귀되었으며 드디어는 모란봉악단에서 세 번째로 공훈배우 칭호를 받게 된다. 2016년 2월 그리고 5월의 공연에서 김유경의 어깨에는 작은 별 4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카메라의 특정 단원에 대한 따돌림은 공연에 따라서 시기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한 예를 든다면 2014년 5월 19일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 무대에서의 '세계명곡묶음 경음악'<ref name="mbb_20140519" /> 연주를 꼽을 수 있다. 이 공연에서 악장이자 제1바이올린 선우향희는 무대에 오르지 못했으며 현악 파트는 제1바이올린 차영미, 제2바이올린 홍수경, 첼로 유은정으로 구성되었다. 기나긴 17분 22초의 세계명곡묶음 연주시간 동안 제1바이올린 차영미는 무려 56번50여 회 이상, 첼로 유은정은 23번의20여 회 이상의 단독 화면 샷이 방송되었으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2바이올린 홍수경은 단 한 번도 혼자서의 단독 화면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의도적인 카메라 따돌림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석에 위치한 피아노 연주자도 아니고 무대 전면에 위치한 현악 3중주단의 한 연주자에게 보여주는 이러한 따돌림은 사실 금방 표가 나는 행동이기도 하다.
 
또한, 현장의 무대 좌우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는 제2바이올린 홍수경을 화면 가득 단독으로 잡은 영상이 나오기도 했던 것으로 보아 TV 방송에서의 이러한 카메라 따돌림은 현장 차원의 판단이 아닌 보다 고도화된 윗선의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카메라 따돌림 덕분에 유튜브의 해당 영상에는 재미있는 댓글들도 있었는데 제2바이올린 연주자를 차영미의 쌍둥이 자매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제1바이올린 차영미와 제2바이올린 홍수경은 가끔 서로 위치를 바꾸기도 하였는데 화면에서는 차영미만 계속 나타나므로 아마도 이것에 기인하는 착각으로 보인다. 이러한 카메라 따돌림은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공연무대 뒤에서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단편적으로나마 알려준다 할 수 있다.